보령의 레거시브랜드인수(LBA) 전략이 순항하고 있다. 국내 판권을 사온 일라이릴리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모두 자체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다. 특허가 끝난 약을 사오는 '역(逆)선택'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보령은 충남 예산의 예산캠퍼스에서 일라이릴리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알림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9일 밝혔다. 2022년 국내 판권을 사온 알림타까지 자체 생산 체계를 가동하면서 보령의 LBA 전략이 완전히 안착했다는 평가다.
통상 의약품 특허는 신약엔 '생명줄'로 여겨진다. 후발 복제약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데다 높은 약값도 보장받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특허 만료 신약'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 배경이다.
보령의 LBA는 이런 신약 시장의 틈새를 노린 전략이다. 특허가 끝나 헐값이 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국내 소유권을 완전히 가져온 뒤 자체 제품으로 만들어 안정적 '캐시카우'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자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면 생산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도 보탬이 된다.
보령이 LBA 전략을 처음 가동한 것은 2020년부터다. 일라이릴리의 항암제 '젬자' 국내 소유권을 3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신약 개발사에 판매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추가 조건 없이 국내 제약사가 오리지널 의약품 소유권을 완전히 가져온 첫 사례였다.
보령은 2021년 일라이릴리의 조현병약 자이프렉사를, 2022년 폐암 치료제 알림타를 차례로 인수했다. 자이프렉스 국내 소유권 인수엔 3200만달러, 알림타엔 7000만달러가 들었다. 이후 국내 생산 체계도 갖춰 젬자는 2022년, 자이프렉사는 지난해부터 예산캠퍼스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전략은 통했다. 보령 인수 후 이들 제품의 국내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보령이 인수하기 전인 2020년 143억원이었던 젬자의 국내 처방매출은 지난해 295억원으로 4년 새 매출이 106% 올랐다. 보령 인수 전엔 140억원대를 유지하던 자이프렉사 매출도 지난해 167억원으로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 수요가 높은 제형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는 것도 매출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보령은 2023년 분말 형태 동결건조 제형이었던 젬자를 액상으로 개발해 출시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젬자 판매량 중 70%가 액상제형일 정도로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이달엔 알림타도 액상으로 출시했다. 분말 제형은 의료진이 환자에게 투약하기 전 주사제로 약을 희석해야 한다. 액상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투여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국내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끝난 뒤엔 낮은 약가 탓에 시장을 철수하는 일도 흔하다. 보령이 이들 제품을 인수하면 환자들은 같은 약을 계속 안정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다. 국내 생산까지 이뤄지면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
글로벌 항암제 생산 경험이 쌓인 보령 예산캠퍼스는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말 대만제약사 로터스로부터 항암제 CDMO 계약을 수주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출 물량을 공급할 계획이다. 보령은 추가 오리지널 의약품을 확보해 LBA 모델을 확장할 방침이다.
김정균 보령 대표는 "LBA 전략은 단순한 품목 인수를 넘어 제조 인프라와 연구개발(R&D) 역량을 활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장 전략"이라며 "앞으로도 글로벌 오리지널 품목을 적극적으로 자사화하고 글로벌에 공급해 '인류 건강에 꼭 필요한 기업'이라는 미션을 실현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