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대일]법으로 정하는 정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1 day ago 2

정년만 늘리면 인건비 상승-청년 일자리 감소
임금-인사체계 개편 없는 연장은 악순환 초래
노사 자율 합의 돕는 정책 지원이 우선 과제
‘성장’ 중심 개혁으로 고용의 선순환 이끌어야

김대일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김대일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정치권이 고령화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 연장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장년층은 예전과 달리 전문대 학력 이상 비중이 30%를 넘고 건강도 좋아 65세까지 일을 계속해도 무리가 없다. 물론 창업이나 귀농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평생을 임금 근로자로 일해 온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취업은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년 연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법으로 정년만 연장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늘어나는 근로자와 길어진 근속 기간에 대응해 사업체 내 승진과 직무 배치 등 인사 체계도 개편되어야 하고 임금도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정이 없으면 인건비가 상승하고 신규 채용이 줄어 청년층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번 60세 정년을 법으로 못 박을 때도 이런 점을 간과했기에 그 부작용이 컸다. 필자의 분석에 의하면 근로자 1인당 인건비는 9.7% 상승했고 신규 채용 비중도 3%포인트 하락하였다. 인건비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인사 체계를 개편하기가 쉽지 않았고, 정년이 연장된 장년층이 받는 임금이 새로 뽑을 수 있었던 청년층 임금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었다. 인사 체계 개편이 쉽지 않았던 기업들이 명예퇴직에 의존하면서 장년층 고용도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업에서는 장년층 일자리 1개당 청년층 일자리가 1.14개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 소폭이나마 장년층 고용이 증가한 것도 의미가 퇴색되었다.

정년을 연장하면서도 신규 채용을 유지하려면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 신규 채용을 종전 수준에서 유지하면 전체 근로자 수가 늘어나므로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임금이 낮아지지 않으면 기업은 근로자 수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노조는 임금 조정에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임금이 떨어져도 생애 소득이 늘어나면 근로자도 이득이다. 일례로 근속 기간이 30년에서 35년으로 연장되면, 연봉이 14% 하락해도 생애 소득에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늘어난 인원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조정 폭이 14% 미만이면,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고도 생애 소득은 늘어나는, 즉 모두가 윈윈하는 정년 연장 패키지가 가능하다. 다만 사업체마다 필요한 임금 조정 폭에 차이가 있으므로, 정년을 몇 년 연장하고 임금과 인사 체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각 사업체의 노사가 합의할 사안이다.

정부는 이런 노사 합의를 지원하면 된다. 세제 혜택, 4대 보험료 감면 등 모범적 합의 사례에 대한 당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또다시 법으로 65세 정년을 못 박으려 한다면 노조는 임금을 낮추는 데 합의할 유인이 없어지므로 노조의 기득권만 보호되고 청년층 일자리는 또 사라지게 된다. 노사가 합의에 이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퇴직 후 재고용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이 굳이 입법을 추진하지 않았어도 이미 시장에서는 다수의 사업체와 연구기관들이 스스로 퇴직 후 재고용을 도입해 신규 채용을 유지하며 장년층 고용도 연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정년 연장에 쏠려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층 일자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청년층 일자리가 없는데 장년층 고용을 늘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1990년 90%를 넘던 25∼34세 남성 취업률은 이제 80%에도 못 미친다. 성장이 정체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며 이런 상황에서 법정 정년 연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원래 성장은 혁신적인 기업이 먼저 앞서 나가고, ‘낙수 효과’를 통해 혁신의 효과가 전체 경제에 파급되면서 완성된다. 혁신 기업이 채용과 하청 물량을 늘리면 그만큼 하청업체도 매출이 늘어 채용을 늘리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선도 기업의 혁신 효과가 전체 경제로 퍼져 나가는 것이 낙수 효과다. 그런데 혁신 기업에서 임금이 먼저 대폭 인상되어 버리면 채용도 하청 물량도 늘지 않아 낙수 효과는 소폭에 그치고 성장도 정체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혁신은 그간 노조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청년층이 입직할 신규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반면 노조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였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계속 벌어져 왔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만 보호받는 경제 구조와 제도를 방치하면 청년층 일자리 상황은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고 정년 연장은 세대 간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정치권이 정말 모두가 윈윈하는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싶다면, 정책 기조부터 초점을 성장에 맞추고 제대로 된 구조 개혁도 시작하면서 사업체별 노사가 합의하는 정년 연장을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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