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트럼프 관세 압박의 숨은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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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트럼프 관세 압박의 숨은 노림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경제 행보가 거침이 없다. 관세 부과를 제외하고는 아직 말에 머물고 있지만 내용이 워낙 거칠다 보니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관세 부과가 결국 자해 행위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국가 간 관세 전쟁으로 번지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모두가 패자로 전락한다. 1920년대 대공황의 시발점도 국가 간 경쟁적인 관세 부과와 환율 절하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위험한 관세 도박은 우리에게는 당장 발등의 불이다. 거의 30년간 지속되고 있는 대미 경상흑자가 최근에 크게 늘어(2023년 880억달러) 미국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가뜩이나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출마저 타격을 입으면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관세 부과의 목표가 단순히 미국의 경상적자 감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의 2023~2024년 경상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수준으로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정점에 달한 2005~2006년의 6%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수준이다. 그렇다면 경상적자 감축 외에 트럼프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첫째는 제조업 특히 전략산업 육성에 필요한 투자를 최대한 해외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재정 부담이 따르는 보조금 등의 유인책 대신 대미 수출국이 관세 부담을 피해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와 현지 생산을 늘리도록 하는 전략이다. 성공한다면 이는 미국의 무역 파트너 국가들에는 수출과 국내 투자 동반 감소라는 이중고를 초래할 수 있다.

2024년 말 잔액 기준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는 7500억달러로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 2700억달러의 2.8배에 이른다. 2009년을 기점으로 해외 직접투자가 외국인 직접투자를 상회하기 시작한 뒤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해외 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난 원인은 첨단기술 접근성, 세제 혜택 등의 긍정적 대외환경도 있지만 과잉규제, 노동시장 경직성, 노동비용 증가 등의 부정적 대내 환경이 어쩌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특히 후자에 의한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우리 경제의 성장과 고용을 갉아 먹을 수밖에 없다. 이제 관세장벽 회피 목적의 해외 직접투자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위협받게 될 것이다.

둘째는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늘어나는 의심을 해소하는 것이다. 의심의 원천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선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 의회가 정한 부채 상한을 주기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가 부채비율이 2024년 123%에서 2029년 13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재정 개혁을 전제로 한 낙관적 전망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면 미국의 부채 위기 더 나아가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안전자산 지위는 미 국채에 대한 막대한 해외 수요의 원천이며, 해외 수요는 미 국채의 유동성과 국가부채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다. 아직은 미 국채의 대체재를 찾기 어렵지만, 각국 중앙은행과 같은 공공 투자자들의 미 국채 매입 수요가 정체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세계 경제 분절화가 심화할수록 미 국채의 국제 유동성과 해외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추진 중인 재정지출 개혁과 관세로 인한 재정수입은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안보를 지렛대 삼아 주요 우방국에 미 국채 매입을 요구하는 것도 해외 수요 확대를 통한 유동성 확보와 금리 비용 축소가 목적이다. 결국 우방국의 돈으로 미국의 부채 위기를 예방하려는 노림수다. 문제는 우리 역시 이런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략이 설계되고 실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철저한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시장 원리보다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분명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은근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혁신’과 ‘개혁’이라는 말만 되풀이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의 안타까운 자화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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