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세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인 왓챠가 490억원 규모 전환사채(CB)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창립 15년 만에 존립 기로에 섰다. CB 투자자와의 만기 연장 합의에 실패하면서 최근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넷플릭스 등 해외 OTT 기업의 국내 콘텐츠 시장 장악력이 더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왓챠, 감사의견 거절
12일 업계에 따르면 왓챠는 최근 관계사에 공지를 띄워 “CB 투자자 만기 연장 이슈로 외부감사인이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했다”고 알렸다. 왓챠는 2023년 기준 자본총계가 -79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CB 상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업 존속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왓챠의 외부감사인은 “계속 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감사의견을 거절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는 2021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두나무, 카카오벤처스 등 주요 벤처캐피털(VC)과 개인투자자로부터 490억원 규모 CB 투자를 유치했다. 상장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프리IPO 성격으로 자금을 투입했고, 당시 기업가치는 3300억원을 넘겼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해외 OTT의 공습이 거세지면서 대응을 위해 콘텐츠 투자와 사업 영역을 늘린 탓에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했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등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1년 넘게 논의된 LG유플러스와의 인수합병(M&A)마저 어그러져 경영이 악화했다.
왓챠는 사업 축소, 자회사 매각을 추진해 2023년 221억원이던 영업적자를 지난해 20억원으로 줄였지만 기한 내 CB 투자자와 합의하는 데는 실패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이 무산되고 기업가치가 떨어지면서 만기 연장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며 “일부 투자자가 감자를 요구해 투자자 간 의견 불일치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외 플랫폼 종속 심해져”
왓챠는 2016년 1월 넷플릭스와 동시에 서비스를 출시한 국내 1세대 OTT 기업이다. 넷플릭스는 18개국에 동시 출시했고 왓챠는 2011년 설립 이후 영상 콘텐츠 평가 플랫폼(현 왓챠피디아)을 통해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섰다. 10년 후 두 OTT의 운명은 갈렸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장악했고 왓챠는 몇 년 새 이용자가 3분의 1 토막 났다.
2022년 2월 기준 133만 명이던 왓챠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지난달 모바일 인덱스 기준 47만 명으로 떨어졌다. 2022년 733억원을 찍은 매출은 지난해 34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넷플릭스 MAU는 1451만 명, 지난해 국내에서 올린 매출은 8996억원에 달했다.
업계에선 티빙, 웨이브와 함께 토종 OTT ‘톱3’로 불린 왓챠의 존립이 불투명해진 데 대해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공습으로 국내 OTT 시장이 양극화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왓챠 관계자는 “추가 투자 유치 방안 등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영상 콘텐츠 시장의 해외 플랫폼 종속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작사가 K콘텐츠를 만들어도 유통과 수익화는 해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며 “넷플릭스에서 크게 흥행하더라도 추가 수익은 거의 얻지 못하는 방식으로 제작사의 협상력이 크게 약화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