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의 M&A인사이트] 〈12〉클릭 위에 세워진 신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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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서울에서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이 뉴욕, 도쿄, 파리에서도 같은 맛이라면,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바로 '표준화'의 힘이다. 세상은 점점 더 넓게, 더 복잡하게 확장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항상 일관된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경험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감동이 될 것이다.

새정부 출범시 단골로 등장하는 공약이 있다. 대한민국을 글로벌 인수합병(M&A)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초 참여정부 시절, '아시아 금융허브' 구상과 함께 M&A 중심지로의 도약이 강조됐다. 공약은 공염불이 됐다. 글로벌은 커녕 강남역 출구도 못 찾는 형국이다.

20세기 중반이후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질서 속에 편입됐다. 이는 단지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총과 자본뿐만이 아니라 표준을 무기로 세계를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구조는 미국에서 설계된 것이다. 인터넷통신의 뼈대인 TCP/IP프로토콜, 월드와이드웹(WWW), Wi-Fi(와이파이) 등 셀 수 없다. 최대의 수혜는 미국기업이다. 구글이 '검색'을, 애플이 '디바이스'를, 아마존이 '커머스'를, 페이스북이 '소셜 네트워크'를 내놓았다. 미국이 만든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다. 마치 영어가 국제 비즈니스의 언어가 되었듯, 디지털 세계의 문법은 미국이 만든 코드와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누구의 규칙이 표준이 되느냐에 따라, 시장의 룰도, 기술의 흐름도, 국가적 위상도 달라진다.

2025년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서비스업 매출액은 3129조원이며, 디지털 플랫폼 거래 비중은 작년 첫 20%를 넘어섰다. 로그인으로 시작된 일상은 수많은 로그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플랫폼은 다양한 참여자가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이들이 혼란 없이 효율적으로 소통하려면, 절차·형식·품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표준화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회원가입 방식, 정보입력 체계, 검색 필터, 매칭 알고리즘, 피드백시스템 등 모든 요소가 명확한 논리와 흐름 위에서 규칙적으로 작동할 때, 일관된 사용자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M&A는 본질적으로 '연결'의 예술이다. 기업과 기업, 자본과 아이디어, 시장과 전략이 서로를 찾고, 이어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연결은 늘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받았다. 거래 정보는 비공개였고, 매칭은 느렸으며, 신뢰는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축적됐다. 플랫폼은 더 이상 “누가 알고 있는가”의 문제를 해결했다. 서울에 있는 매도자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인수자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될 수 있다.

지난 정부의 M&A허브구상이 무산된 이유는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전통적 금융도시의 위상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M&A는 현금, 주식, 차입 등 다양한 금융자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초연결사회에서의 돈과 사람은 '정보'에 따라 뭉치고, 흩어진다. 과거 오프라인 경제는 지리, 자원, 노동 중심이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정보가 모든 자원의 구심점이 되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단순한 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정보가 축적되고 해석되는 공간이다. 사용자의 관심, 이동, 클릭 하나하나가 모두 데이터로 수집된다. 이 정보는 다시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예측되고, 시장을 재구성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이 홍콩과 싱가포르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금융중심지로서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M&A정보집결지가 된다면, M&A허브는 더 이상 지리적 우위가 아닌, 정보주권의 문제로 재정의될 수 있다.

작은 놈이 큰 놈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날카로운 놈은 큰 놈을 이길 수 있다. 21세기 산업 패권은 날카로운 정보의 칼끝에서 나온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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