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85〉AI 시대는 안전한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은 불가피하다. 특히 AI를 활용해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시간 정보 백업까지 해야하는 정부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전하고 신뢰성있게 운영돼야만 한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9월 26일 발생한 화재는 우리의 현주소를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와 서버를 분리하는 작업을 시도했으나 작업자가 작업을 중단한지 약 40분 만에 미상의 이유로 배터리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언론 보도다. 화재가 발생 후 22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진압된 것은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의 한계에 대한 해결책을 우리가 여전히 갖고 있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전원 공급에는 정전에 대비한 무정전 전원장치 뿐만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사용되는데, 두 장치 모두 에너지 밀도가 높아 작은 공간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고는 우리에게 엄청난 공적 정보와 자산의 손실을 일으켰다. 정부는 화재 후 사흘이 지난 29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전체 647개 중 73개 서비스만 복구했다고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성상 한 번 불이 붙으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진화가 가능하다는 제약은 오직 기술혁신으로만 풀 수 있다. 그러한 혁신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 R&D에는 돈이 든다. 정부든 민간이든 원하는 결과가 나오거나 적절한 대안이 개발될 때까지 투자해야 한다. 몇 년이 걸릴지, 몇 십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우리가 개발하거나 다른 나라가 개발한 것을 사오거나 둘 중 하나다.

AI 시대에는 전원공급장치만 문제가 아니다. AI가 직접 범죄에 활용되는 일도 적지 않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신원을 해킹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생성형 AI 클로드를 서비스하는 앤스로픽은 자사의 AI가 북한 해커들의 해킹범죄에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북한 해커들이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에 원격 근무를 하는 직원으로 취업하기 위해 AI로 가짜 신원도 만들고, 취직에 필요한 프로그래밍 시험도 통과했으며, 업무까지 보았다고 밝혔다.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조직은 챗GPT로 군 공무원증을 가짜로 만들어 군 관계 기관에 피싱을 시도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듯 AI 활용을 위해서는 화재에 취약한 ESS가 사용돼야 한다는 문제점과 생성형 AI가 범죄에 쉽게 활용된다는 취약성은 우리에게 다음 단계의 행동을 요구한다. 기술 개발이 그것이지만, 요구되는 것이 한가지 더 있다.

얼마 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열리는 회의에 오기 위해 국내선을 이용한 참석자들이 경험한 보조배터리에 대한 조치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탑승전 아무런 문의나 주의 조치가 없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배터리를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더니 단자에 검정색 테이프를 붙여줬다고 했다. 같은 항공사에서도 직원에 따라 배터리에 관해 묻거나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 달랐다. 우리가 과연 수많은 보조배터리가 실리는 국내선 항공편을 마음 놓고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안심하고 써도 되는 배터리가 등장할 때까지는 우리의 제도와 시스템이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 '대충 하지 뭐' '이쯤이야 그냥 요식행위지' 하는 방심과 태만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 여전히 기술개발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성실한 태도와 믿을만한 법과 제도는 우리를 재난에서 구할 수 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