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지난 주말, 정부의 핵심 데이터센터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자정부 시스템이 마비되며 국민 생활 곳곳에 혼란이 빚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민간 데이터센터나 금융기관에 요구하는 백업·재난대응(DR) 시스템에 비해 정부의 전자정부시스템이 오히려 취약성을 보였다.
우리는 평소 화재나 자동차사고를 대비해 보험을 들고, 홍수와 가뭄을 대비해 다목적댐과 저수지를 만들며, 농산물 가격 폭락과 폭등을 대비해 주요 농산물을 비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위험에 대비한다. 이러한 준비는 위기가 닥쳤을 때 효능감이 높기에 공공과 민간 모두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꾸준히 돈을 내면서 보험을 유지하고, 해빙기, 봄 건조시기, 장마·수해 다발시기, 혹한기 등의 다양한 조건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장비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쉽게 잊는다. 요즘 인공지능(AI), 가상화폐나 양자컴퓨팅 같이 인기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인력과 예산, 그리고 고위직의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정보보안, 안전, 품질에 대해서 정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걱정이 된다. 이런 분야들은 당장 손을 대지 않아도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럭저럭 돌아간다. 그러면 고위직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이후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자나 담당기관을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재난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책임자 처벌'과 '예산 부족'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러나 책임자의 범위가어디까지 인지 명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는 그 일을 맡았던 담당자가 벌을 받게 된다. 담당자는 예산과 인력과 시간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또 예산 타령”이라며 비판하며 입을 막는다. 하지만 조직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예산과 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왜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는지, 어떤 우선순위가 작동하였기에 이런 재난을 미리 예방하는 조직과 인력을 갖추지 못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이번 전자정부 먹통 사태 역시 재난 복구 시스템 구축·운영, 그리고 유지보수 예산이 부족했다는 보도가 있다. 이미 2022년 대다수의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데이터센터 화재가 있었고, 이에 대해 민간 사업자에 예방 수칙과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을 체계화했다. 그런데 메신저 서비스보다 훨씬 중요한 전자정부서비스가 재난 대응에 미흡했고, 백업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데이터 손실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유사하게 교통, 통신, 금융·회계, 안전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프라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노력으로 유지된다. 이들은 “아무 일 없으면 본전, 사고나면 피박”이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런 인력과 예산은 '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삭감되고 있다. 이들의 기여는 시스템이 멈춰야 비로소 드러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들이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다.
최근 통신사 해킹, 가뭄, 산업재해 등 반복되는 사고 역시 시스템 개선과 투자 부족이 원인이다.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내놓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정 부분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보험을 드는 마음으로 안전과 품질, 보안,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예산과 정책이 필요하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yongjin.park@kispric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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