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성호]日 관광객 사망자 운구비용,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격

1 day ago 2

황성호 사회부 기자

황성호 사회부 기자
지난해 초 일본의 지상파 민방인 TBS에선 한일 간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Eye Love You’가 방송됐다. 일본에 건너가 아르바이트하는 한국인 남성과 일본 직장인 여성의 얘기다. 지상파 방송이 황금 시간대인 오후 10시에 방송했고, 현지에선 꽤나 인기를 끌었다.

2일 음주운전 승용차에 치여 사망한 58세의 일본인 여성도 이 드라마의 팬이었다고 한다. 그는 딸과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첫날 밤 서울 동대문역 사거리에서 참변을 당했다. 10부작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낙산공원을 가던 길이었다. X(옛 트위터)에서 자신을 이 사건 유족이라 밝힌 인물은 “어머니는 Eye love you라는 드라마 촬영지인 낙산공원에 가고 싶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런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의 마지막 배경이 된 낙산공원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마치는 행복의 장소다. 그런 장소를 찾던 한 50대 일본인 여성의 여정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마침표가 있는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계속된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어머니를 잃은 딸은 무릎과 이마를 다쳐 한국의 병원에 입원했고, 일본에 있는 유족들은 급히 한국으로 왔다. 타국에서 황망한 사건 앞에 놓인 유족들에겐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일본으로 운구하기 위한 비용만 1500만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이 공개되자 가해자 측에서 이 비용을 내겠다고 나섰다. 그는 소주 3병을 마신 채로 한밤중 테슬라를 몰고 질주하다 이런 사고를 냈다.

우리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운구 비용을 가해자가 아닌 정부가 먼저 지급할 수 있었다면 사망한 일본인 여성의 가족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안겨준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작아지지 않았을까.

그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격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에선 이번 사건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 고개 들고 있기도 해서다. 아사히TV 등 현지 언론에서는 이미 “한국은 음주운전 치사 처벌이 약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경찰은 유족이 운구 비용으로 고민에 빠졌다는 점을 공개해 도움을 주려 했다. 한국에 온 유족들에게 숙소도 지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인 운구비를 내줄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도 한국에서 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나서 피해를 보상해 주는 ‘범죄피해자구조제도’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교통사고와 같은 과실 범죄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정부가 장례비를 지급했던 선례가 있었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장례 비용 최대 1500만 원과 생활지원금 2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번에는 과연 방법이 더 없었을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1637만 명으로 1년 전보다 약 48% 늘어났다. 올해는 더 많은 손님이 찾는다고 한다. 58세 일본인 여성의 사례가 되풀이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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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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