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단순히 더운 문제가 아니다.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젖소는 고온 스트레스에 약해 기온이 27도를 넘으면 사료를 덜 먹기 시작하는데, 기온이 32도 이상 치솟으면 우유 생산량이 최대 20% 줄어든다. 원유가 원활하게 생산되지 못하면 생크림 공급에 차질이 생겨 빵집과 카페 주인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는 높은 수온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광어 폐사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해 고수온에 따른 양식업 피해액은 역대 최대인 1430억 원에 달했고 올해도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배추 수급도 불안하다. 해발 400m 이상 고랭지에서 재배하는 여름 배추는 폭염에 매우 취약하고 생산량 변동성도 매우 크다.
도시에는 더 치명적이다. 도시는 태양열을 흡수하는 콘크리트와 벽돌, 아스팔트 등으로 덮여 있다. 녹지가 많지 않고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로 가득해 열섬 효과가 발생한다. 도시를 잇는 철도 선로가 휘거나 전선이 녹는 사고도 있다. 냉방 비용이 증가하고 온열질환에 따른 의료비 부담도 커진다. 노동 생산성이 하락하지만, 근로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해지면서 생산 비용은 늘어난다. 생산성 하락에 세수는 감소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느라 정부 지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폭염의 일상화’에는 여전히 둔감한 편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밭일을 하다 열을 이기지 못하고 숨지는 사례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지방자치단체가 드론을 띄워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니 즉시 휴식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은 건설 근로자들이 온열질환을 앓고 맨홀에서 작업하다 질식 사고가 발생한다. 고온에서 산소 농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유해가스마저 발생하면서 질식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폭염은 모두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칠까. 폭염으로 프랑스 포도 농장에선 수확량이 많이 감소했다. 반면 서남부 지방에서 달콤한 화이트 와인 정도를 생산하던 독일은 기후변화 덕에 새로운 와인 산지로 부상했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에 이어 품질 좋은 레드 와인까지 내놓고 있다. 결국 각자 상황에 맞게 적응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도시 세비야는 2022년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태풍이나 허리케인처럼 분류 체계를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폭염을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1∼3단계로 정도를 나눴다. 일본과 독일은 기후 위기에 대처할 법안을 마련했다. 일본은 2018년 12월 기후변화 적응 계획, 추진 방향 등을 담은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도 지난해 7월 기후변화에 따른 적응 전략 등을 담은 연방 기후변화적응법을 제정했다. 세계기상기구는 “폭염을 24시간 전 경고하면 피해를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도시 녹화, ‘최고 불볕더위 책임자’ 임명 등을 해법으로 꼽았다. 폭염을 상수로 두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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