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만든 기술인데…" 배신해도 합법? [대륜의 Biz law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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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만든 기술인데…" 배신해도 합법? [대륜의 Biz law forum]

기업은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 1·2차 공급사와 함께 납품할 특정 부품의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게 대표적이다. 공급사들은 기술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대기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납품 후 수익을 나눠 가질 것을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항상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개발이 완성돼 갈 무렵 1차 공급사가 2차 공급사와의 협업을 중단하고 단독으로, 또는 새로운 2차 공급사와 함께 대기업에 최종 납품을 하는 경우, 반대로 2차 공급사가 1차 공급사를 건너뛰고 직접 단독으로 대기업에 최종 납품을 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기술 개발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했지만, 정작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는 할 수 없게 된 기업 입장에선 기술 탈취를 당한 셈이다.

이때 피해 회사가 가해 회사를 상대로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수 있을까? 최소한 기술 사용료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기술자 입장에선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는 '내 기술'을 탈취당한 것인데, 법원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상대방 동의 없는 일방적 사용 가능한가

두 개 이상의 기업이 공동 개발한 영업 비밀은 어느 기업의 것일까? 각 공동 개발자의 사용 가능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해당 기술은 개발자들에게 공동으로 귀속되지만, 별도의 계약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공동 개발자 1인은 다른 개발자의 동의 없이도 기술 전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대법원 2024. 11. 20. 선고 2021다278931, 278948).

위 사례에 대입해보자. 대기업의 1·2차 공급사가 함께 영업 비밀 기술과 부품을 개발했는데,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배신하고 단독으로 영업 비밀을 사용해 해당 부품을 생산한 후 이를 대기업에 납품하더라도 영업 비밀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연구 개발자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이 만든 기술인데…" 배신해도 합법? [대륜의 Biz law forum]

공동으로 개발한 결과물이 공동으로 귀속된다는 건 일견 당연한 판단이다. 문제는 '공동 귀속'이 '각 개발자의 사용 가능 범위'와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물건을 예로 들어보자. 민법 제257조는 '공동 소유'의 형태를 다시 '공유', '합유' 및 '총유'로 구별한다. '동산과 동산이 부합'해 합성물이 된 경우 '부합한 동산의 주종을 구별할 수 없는 때'에는 '합성물을 공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와 B가 각자 갖고 있던 물건을 서로 부합시켜 합성물을 만든 경우, 위 규정에 따라 합성물은 A와 B의 공유가 된다.

민법·특허법 논리 준용 어려운 이유

합성물을 공유하는 A와 B는 민법의 공유 관련 규정(민법 제262조 내지 제270조)에 따라 다른 사정이 없는 한, 각자가 합성물 전부를 지분의 비율로 사용·수익할 수 있다. A와 B가 위 합성물에 대해 절반씩 지분을 가진다면 A와 B는 이를 절반씩의 비율로 사용·수익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민법상 논리를 영업 비밀에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건의 경우 A가 사용·수익하는 동안 B가 동시에 사용·수익할 수 없지만, 기술의 경우는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은 A가 사용하는 동안 B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A와 B가 공유하는 기술에 민법상 공유 규정을 적용하면 해당 기술을 A와 B가 보유 지분에 따라 나눠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결론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이 문제에 대해선 '공유 특허'의 사용 방법을 참조해 볼 수도 있다. 우리 특허법은 제99조 제3항에서 '특허권이 공유인 경우에는 각 공유자는 계약으로 특별히 약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공유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그 특허발명을 자신이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연구자가 기술을 비밀로 유지하는 경우 '영업비밀'이 되고, 이를 공개하고 재산권으로 등록한다면 '특허(또는 실용신안)기술'이 되는 것이므로 영업 비밀 기술과 특허 기술의 대상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둘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을 '공유'라고 보는 경우 각 공유자가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같이 만든 기술인데…" 배신해도 합법? [대륜의 Biz law forum]

다만 위 판결이 "공동으로 개발한 연구 결과물은 공유"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데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원이 공유가 아닌 '공동 귀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 귀속'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우리 법원은 공동 연구 개발 결과를 공유라고 보고, 특허법 공유 규정을 준용해 각 공유자가 마음대로 그 결과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섣불리 결론 내릴 순 없다. 사견이지만 우리 특허법과 특허권의 공유 규정은 일본의 특허법을 참고한 것인데, 문제는 일본 민법은 우리 민법과 달리 '공동 소유'의 형태를 '공유', '합유' 및 '총유'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특허법의 '특허 공유' 규정을 우리 민법의 '공유' 규정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한 번 더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다.

'이익 보호'-'침해 규제' 달리 본 대법원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이유로 "공동 개발자는 다른 개발자의 동의 없이도 공동 귀속 기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법원은 권리자 보호가 아닌 '행위자(침해자) 규제'의 관점으로 위 문제를 판단했다. 이는 과거 헌법재판소가 "부정경쟁방지법은 주지된, 즉, 널리 알려진 표지와 혼동이 생길 염려가 있는 행위를 개별·구체적으로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호 대상보다는 규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헌재2001. 9. 27. 헌바77 참조)고 판단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의 대법원 판결 내용을 보면 "수인이 영업 비밀을 공동으로 보유하는 경우에도 그 보유자 중 계약 관계 등에 따라 다른 보유자에 대하여 영업 비밀을 비밀로써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다른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였다면 다른 보유자와의 관계에서 (라)목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생략) 원고와 피고는 공동으로 보유하는 영업비밀인 이 사건 기술정보의 사용 방법, 사용처 등 사용 제한에 관하여 별도의 약정을 하지는 않았으므로, 피고가 이 사건 기술정보를 반드시 원고에게 공급하는 제품의 제작에만 사용하여야 한다거나 원고의 동의를 받고 사용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위 대법원 판결)고 했다. 결국 법원은 '누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문제되는 행위가 규제 대상인가?'를 판단한 것이다.

위 판결에 대해 "권리자 이익 보호나 침해자 행위 규제나 결국 같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사용되는 공동 연구 개발 계약서에 "연구 결과는 공유한다"고 단순하게 적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적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볼 때 권리자의 이익 보호와 침해자의 행위 규제를 가려내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앞서 설명한 내용에 기반하면 계약서에 "공동 개발 결과는 공유다"라고 적거나 그마저도 적지 않는 경우 향후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법률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도출된다. "공유 개발 기술은 공유다"라고 명시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공동 개발한 기술은 상대방이 무단으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연구 개발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공동 개발 계약을 최초로 체결할 당시의 취지에 맞게 결과물을 사용·수익하기 위해선 당사자 의사에 들어맞는 명확한 계약이 선행돼야 한다. 분쟁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법률 전문가의 조력 역시 필수적이다.

조민우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ㅣ연세대학교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약 8년간 자동차 충돌 안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변호사 시험 3회)했고, 연세대 법전원에서 지식재산법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0여 년간 특허청 차세대수송심사과 심사관, 서울중앙지방법원 지식재산전담재판부 소속 기술심리관으로 일하며 특허, 영업비밀 등 지식 재산 사건 관련 전문성을 쌓았다. 수원지법 전문심리위원과 연세대 강사를 겸직한 이력도 있다. 2024년 대륜에 합류한 이후 지식 재산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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