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이어 영화 '첫 번째 키스' 각본…중년 부부 타임슬립 로맨스
"연약한 존재로서 인간 그리다 보면 웃음·눈물 자연스레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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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2023년 개봉한 일본 영화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큼이나 각본가인 사카모토 유지(58)가 큰 관심을 받았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을 제외하고 모든 작품을 직접 집필하며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고레에다 감독이 28년 만에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의 영화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가져가면서 고레에다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쓰카하라 아유코 감독의 '첫 번째 키스'는 사카모토가 '괴물'의 차기작으로 선보이는 극장용 영화다. 중년 여성 칸나(마쓰 다카코 분)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신비한 동굴을 건너 15년 전 청년 시절의 남편 카케루(마쓰무라 호쿠토)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낯설지 않은 설정이지만 남편이 죽기 전 이 부부가 이혼 직전까지 갈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아내는 과거로 간 이후에도 여전히 40대 후반 중년의 모습이라는 점이 신선함을 준다.
"(스토리보다) 배우들의 조합이 먼저였어요. 47세의 배우와 29세의 배우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면 재미있을까 생각했죠. 그러다 부부 사이를 떠올렸습니다."
사카모토는 최근 한국 매체들과 서면 인터뷰에서 작품의 시작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원래는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이 인간관계를 그려내는 데 있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부부 관계는 보편적이면서도 쉽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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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30년 가까이 부부 관계를 이어온 기혼자다. 배우 모리구치 요코와 1998년 결혼해 슬하에 딸을 뒀다.
사카모토는 실제 겪은 일을 바탕으로 각본을 쓴 것이냐는 물음에 "어떤 이야기를 쓰든 경험을 녹이는 편"이라며 "제 안에서 생겨났던 웃고, 화내고, 울었던 때의 감정을 기반으로 집필하고 있다"고 답했다.
영화 속 아내는 남편을 살리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로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러나 남편이 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사랑에 빠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꾸만 그에게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카모토는 "따뜻한 마음과 쓸쓸한 마음은 진자(振子)와 같아서 두 개 다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영화에서도 두 가지를 모두 소중한 감정으로 그려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웃음과 눈물은 마음속의 같은 장소에 있지 않겠느냐"면서 "연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다 보면, 웃음도 눈물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더라"라고 했다.
1989년 드라마 '동·급·생'으로 데뷔한 그는 멜로, 코미디 장르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를 담은 작품도 여럿 선보일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또 섬세한 대사와 창의적인 스토리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각본가로 꼽힌다.
이에 대해 사카모토는 "제 능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주위의 격려를 받으며 좋은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대가 없다면 창작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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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드라마 '마더', '콰르텟', '이츠코이',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등으로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사카모토는 "너무나 기쁘다. 자 역시 한국 작품을 무척 좋아한다"며 "우리가 더욱더 친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창작자와의 협업에 아주 관심이 많다. 앞으로 젊은 세대들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창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고 강조했다.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2월24일 18시4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