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유튜브 광고가 현지에서 화제다. 이 광고는 공개 두 달 만에 조회 수 2000만 회를 넘겼다. 엑스코프리는 2020년 미국에서 출시됐으며 이르면 연내 한국에서도 허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 환자는 제품이 나온 뒤에도 광고를 접할 수 없다. 국내에선 약을 처방·조제하는 의사와 약사가 아니라 환자에게 전문의약품 정보를 알리는 게 사실상 금지됐기 때문이다. 해묵은 약사법 때문에 환자의 알 권리만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고비, 美서 대중 광고 확대
23일 광고 분석 기업 아이스폿티브이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상위 의약품 10개 브랜드가 TV 광고에 지출한 비용 총액은 2억1940만달러에 달했다. 전년 동월 대비 45% 늘어난 수치다.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 의약품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였다. 광고 비용이 3990만달러(약 550억원)로 5월 광고비(2410만달러)보다 65.6% 늘었다. 체중 감량으로 삶에 활력을 얻고 심장 질환 위험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광고는 “민간 보험 가입자는 ‘0달러’에 투여할 수 있다”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환자에게 약을 투여할 때 이점은 물론이고 투약 비용까지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카이리치’(3030만달러)와 ‘린보크’(2800만달러)도 지난달 미국에서 광고 비용을 많이 지출한 의약품으로 꼽혔다. 이들 제약사는 세계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미국프로농구(NBA) 중계에 초점을 맞춰 환자를 대상으로 약의 인지도를 높였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중장년 남성,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
한국 제약·바이오 회사도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의약품 광고에 나서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 TV 광고를 시작했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의 TV 광고와 함께 유튜브, SNS 등 광고를 병행하고 있다.
◇한국은 병원에서 게시물도 못 걸어
국내에선 이런 광고는 내는 것은 물론이고 의약품 정보를 환자에게 알리는 일조차 금지됐다. 약사법 68조에 따르면 전문의약품, 원료의약품, 전문의약품과 성분이 같은 일반의약품은 의·약학 전문가 대상 의약 전문 매체에만 광고할 수 있다.
광고뿐만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들이 머무는 병원 대기실에 전문의약품 정보를 담은 게시물을 거는 것도 금지된다. 질병 정보를 안내할 때도 특정한 약이 연상된다면 약사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 백신 등 감염병 예방용 의약품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약 정보를 알릴 수 있다.
약사법 68조가 신설돼 의약품 광고 규제가 마련된 것은 1991년이다. 30여 년 전 만들어진 해묵은 법이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국가가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한 것은 아니다. 미국, 뉴질랜드 등에선 폭넓게 허용되지만 유럽, 일본에선 이를 금지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도 한국의 전문의약품 규제는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블로그, 유튜브 등에 전문의약품에 관해 잘못된 정보가 쏟아지지만 수정 요청조차 하지 못한다”며 “약사법이 환자 건강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