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라이온킹' 등 영화음악 메들리…스크린 연출로 몰입도 배가
트럼프 겨냥 뼈있는 농담도…"트럼프가 싫어하는 나라 출신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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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최주성]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여러분이 최대한 큰 반응을 보여주실수록 저희는 좋습니다. 여러분이 에너지를 보내주시는 만큼 저희가 돌려드릴게요. 공정한 거래죠?"
출항을 알리듯 묵직한 저음을 내는 튜바 소리 위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상징하는 장중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서 연신 환호성이 터졌다.
무대에 나란히 선 바이올린과 전자 첼로 연주자들은 팬들의 호응을 접하자 이에 화답하듯 몸을 역동적으로 흔들며 박진감 있는 선율을 들려줬다. 중앙에 선 한스 치머는 힘 있는 기타 연주로 앙상블을 완성하며 팬들의 호응을 키웠다.
17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한스 치머의 내한 공연에서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감상하듯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명곡들에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독일 출신의 치머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 음악을 제작한 유명 작곡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온 킹'과 '듄'으로 두 차례 음악상을 받았으며,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다섯 차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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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치머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7년 국내 한 음악 축제에 출연해 한국 팬들을 처음 만났으며, 2019년에는 단독 내한 공연을 개최했다. 6년 만에 열린 이번 공연에는 8천500명의 관객이 들어차 매진을 기록했다.
치머는 여성 보컬의 독창을 앞세운 '듄' OST와 빠른 박자의 현악 연주가 두드러진 '인셉션'의 '몸바사'(Mombasa)를 들려주며 공연을 열었다. 이어진 '원더 우먼' OST에서는 전자 첼로의 무게감 있는 연주가 들리는 가운데 코러스 가수들이 박자에 맞춰 양팔을 굽혔다 펴는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였다.
이날 치머는 곡이 바뀔 때마다 유쾌한 입담으로 웃음을 끌어내며 팬들과 소통했다. 일본, 쿠바 등 다양한 국적의 연주자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겨냥한 듯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치머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싫어하는 모든 나라에서 모인 밴드"라고 이야기하자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무대 곳곳을 누비는 다채로운 퍼포먼스로 볼거리를 제공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맨 오브 스틸' OST에서 기타리스트가 현란한 독주를 선보이자 치머는 의자를 거꾸로 놓고 앉아 등받이를 연신 두들기며 리듬을 더했다.
'듄 2' OST에서는 치머가 전자 기타를 메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뒤 객석 주변을 돌며 연주를 들려줬다. 팬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장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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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커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영화에 맞는 영상을 송출한 연출도 몰입감을 더했다.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주제가 '나우 위 아 프리'(Now We Are Free)를 부른 리사 제라드가 실제로 등장해 호소력 있는 노래를 들려주는 가운데, 스크린에 갈대밭의 풍경이 펼쳐지며 비장한 느낌을 더했다.
특히 후반부 '인터스텔라' 주제가에서는 무대 전체를 우주 공간처럼 연출하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여기에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과 여성 보컬의 고음으로 긴장감을 조성했다 고요한 오르간 음향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치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가수 레보 엠과 '라아온 킹' 주제가를 들려주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은 케냐 출신 코러스들이 북을 두드리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레보 엠은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채우며 3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관객 여러분이 없었다면 제가 작곡할 이유도, 연주할 이유도 없었겠죠. 무엇보다 우리가 만나고 연결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cj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7일 23시23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