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자기를 의식한다는 것

6 days ago 3

[MZ 톡톡] 자기를 의식한다는 것

‘자의식 과잉’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모든 걸 네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라며 쏘아붙이는 드라마 속 대사에서, 자신이 인기 있다는 사실을 콘텐츠 삼는 유명인을 향한 비웃음 섞인 댓글에서, 오직 자신만이 합당한 명분을 가졌다며 비장하게 부르짖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마치 세상이 늘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요즘 “그건 자의식 과잉”이라는 한마디로 깔끔하게 진단된다.

그런데 사실 자의식이라는 단어 본래의 뜻은 상당히 중립적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자의식을 ‘자신이 처한 위치나 행동, 성격 따위에 대하여 깨닫는 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는 일’, ‘외계나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에 대한 의식’ 등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깨닫는 것’ ‘아는 것’ ‘구별 짓는 것’이다. 사용되는 맥락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차이를 빼면 ‘메타인지’와 비슷한 의미이기도 하다. 자기 몰입이 지나쳐 나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타자와 다른 나라는 존재를 명료히 의식하고 있는 상태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그런 자의식이 생겨나는 것부터 ‘과잉 경계’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매체에서 ‘세상은 네 생각보다 너에게 관심이 없다’거나, ‘내가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라’는 경계성 조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직 자의식이 또렷이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조차 자기 세계가 비대해지는 것을 염려해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앞서, ‘내가 원해야 할 것만 같은 것’ ‘내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을 찾는 데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자의식이 넘칠 것을 염려하다가 되레 타자와 세상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 과잉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때 자의식 과잉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의식 주입’이다. 하면 좋을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수많은 콘텐츠에 담겨 입체적 수단으로 공유되는 세상이다. 예전엔 개인이 한두 명의 롤모델이나 멘토에게서 받던 영향이 이제는 그야말로 온 세상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다. 때론 조금 찌질하더라도 내면의 심연에 푹 가라앉아 보고, 나의 세계와는 다른 타인의 세계와 부딪혀도 보며 생겨나야 할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타인의 시선과 입을 빌려 재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남들이 볼 때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는 것 같을까 봐, 내가 없어져선 곤란하다.

중요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나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스스로 나의 목소리를 들어 주고, 기쁨과 불안을 살피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보기에 더 나은 내가 되도록 하루하루 정진하는 것은 인생 전체의 공기를 맑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의식 과잉이든, 자의식 과잉을 과잉 경계하는 것이든, 어떤 상태를 지나치게 앞서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건강하고 산뜻하게 의식하는 오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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