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뜨거워지는 도시, 도시숲이 그리는 녹색 희망

1 month ago 12
김인호 산림청장김인호 산림청장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재난이다. 지난 7월 프랑스는 16곳에 최고 수준의 폭염경보, 그외 68개 지역에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의 경보가 내려졌고, 1350여개 학교가 전체 또는 부분 휴교를 결정했다. 같은 시기 튀르키예 서부 지역에서는 시속 120㎞ 강풍으로 인한 연쇄 산불로 5만명 이상을 대피시켰다. 올해 6월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폭염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남에 따라 아시아 취약 지역 사회 회복탄력성 강화를 위해 사전 대응 조치와 모니터링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상이변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를 기록했다. 올해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가장 더웠던 지난해 25.6℃보다 0.1℃ 높아 역대 최고 1위를 경신했고, 평년보다 2.0℃ 높았다. 6월 말부터 이른 더위가 나타나 8월 하순까지 지속됐다. 전국 열대야 일수는 15.5일로 평년보다 9일 많았다. 특히 서울은 열대야 일수가 평년 12.5일 대비 3.5배가 넘는 46일로 1908년 관측 이래 가장 많았다. 폭염 현상은 에너지 소비 증가, 건강 악화, 심지어 사망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위협을 완화하는 자연 기반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도시숲이다. 도심 속 나무와 숲은 폭염을 완화하는 과학적 장치다. 도시숲은 뜨거운 직사광선을 가려주는 그늘, 나뭇잎에서 수분을 뿜어내어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증산작용으로 도시 온도를 낮춘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도시숲은 주변보다 3℃에서 7℃까지 온도가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서울시를 위성사진으로 분석한 결과 도시숲이 많은 지역이 적은 지역에 비해 지표면의 온도가 낮아 폭염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도시숲 면적 비율이 높은 강북구, 종로구, 관악구 등의 지표면 평균온도는 약 35.6℃였지만 도시숲이 적은 영등포구, 강서구, 성동구 등에서의 지표면 평균온도는 약 38.0℃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 도시는 이미 도시숲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호주 멜버른시는 도시숲 전략을 수립하면서 2040년 공공영역의 도시나무 그늘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년 3000그루를 심는 내용을 담았다.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가든 시티(Garden City)'를 넘어 '네이처 시티(Nature City)'를 표방하며 도시 전체를 녹화하고 있다. 고층 건물 옥상과 벽면에 나무를 심고, 도로·주거지·상업지구까지 녹지축을 연결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또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명예교수인 세실 코나이넨딕은 '3-30-300' 규칙을 제안했다. '집이나 하교, 직장에서 나무 3그루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주변 지역 도시나무 그늘 비율이 30%여야 하며, 최소 0.5ha 이상의 녹지를 300m 이내로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숲을 누려야 지속가능한 도시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T시론] 뜨거워지는 도시, 도시숲이 그리는 녹색 희망

도시숲은 단순히 폭염을 막는 '자연 에어컨'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산림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숲이 많은 지역 주민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우울증 발생 위험이 평균 18.7% 낮았다. 숲은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연대감을 높이며, 자살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는 치유 공간이다. 따라서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정신건강 문제를 고려할 때, 도시숲은 공공 보건의 중요한 인프라로 봐야 한다.

도시숲은 곤충, 조류 등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생태적 기능도 한다. 서울 홍릉숲에는 박새, 꾀꼬리, 참매 등 8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이는 한 줄 가로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생태적 가치를 보여준다. 도시숲은 도심 속 '작은 생태계'로 생물종 보존에 기여한다.

즉 폭염과 열대야를 낮추는 도시의 자연 에어컨 역할을 하는 환경적 가치, 곤충,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로 생물적 가치, 우울증을 이겨내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건강한 사회적 가치 등 공익적 가치를 갖고 있다.

산림청은 이러한 도시숲의 다양한 가치를 바탕으로 극한기후 시대에 도시의 적응력을 높이는 도시녹화를 위해 2003년부터 전국 도시 생활권 및 주변 지역에 5963개소의 도시숲을 조성했다. 올해도 기후위기 대응과 도시민의 건강증진 및 휴식을 위한 기후대응도시숲 178개소와 도시 외곽 산림의 맑고 찬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도시바람길숲 20개소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숲을 확대하고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은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투자다. 또 큰 규모의 도시숲 확충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도시 곳곳에 작은 규모의 숲과 한 그루 나무도 충실히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도시에는 다양한 공익 인프라가 있지만 나무와 숲은 매년 자라나니 가꿔 줘야 한다. 극한 기후의 시대에 가로수는 그늘을 주기도 하지만 쓰러지면 인명과 재해 리스크도 있다. 나무 줄기와 가지를 손질하고 살아 숨 쉬는 흙으로 가꾸어 건강한 나무와 숲으로 돌봐야 한다. 도시 내 유휴부지를 발굴하고 한 그루 나무는 물론 학교숲, 교통섬숲, 아파트숲 등 여러 유형의 도시숲을 맞춤형으로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도시숲을 조성·관리하는데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민간과 시민단체의 참여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빅데이터와 위성정보를 활용한 철저한 도시숲 관리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것이다. 도시숲을 단순한 미관 사업이 아닌 국가 기후 안보와 국민 건강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숲의 다양한 공익 가치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국민에게 되돌려줄 도시숲 정책은 국민주권 시대에 국민 건강을 위한 핵심이다. 뜨거워지는 도시 속에서 '도시숲'은 단순한 녹지공간을 넘어, 기후 위기에 처한 국민을 지켜줄 '녹색 희망'이다.

김인호 산림청장 kimih708@korea.kr

〈필자〉충북 청주 출신으로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태조경학 석사와 협동과정조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 청장은 30여년간 환경·조경·산림 분야 연구와 정책 자문에 힘쓰며 학계와 현장을 넘나드는 활동을 펼쳤다. 1992년부터 2022년까지 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재 양성에 힘썼고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산림청 산림정책평가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9월부터 환경교육혁신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올해 8월 제36대 산림청장으로 취임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