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제조업에서 AI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하여

1 month ago 12
윤일용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윤일용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

초거대 모델에 국가적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제조 현장에서도 이미 공간인지 기술을 활용해 단위 설비를 자율화하고, 거대언어모델(LLM)이 공정 설비 시스템의 감독 제어에 적용되기 시작하는 등 생산성과 품질향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제조업이 제조 현장 외에도 마케팅, 구매, 생산, 물류 등 다양한 밸류 체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인공지능(AI) 역시 각 분야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초거대 모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투자를 뒷받침하려면 지금 당장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캐시카우'로서의 AI 역할이 필요하다. 제조, 리테일, 물류 등 기존 산업에 AI를 깊이 녹여내는 산업 AI가 이에 적합하다. 특히 제조업에서 AI가 성과를 내기 위한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산업계는 생태계를 열고 협력해야 한다. AI는 오픈 커뮤니티와 공유 문화를 통해 빠르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제조 분야에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많은 기업이 제조 AI를 경쟁우위 기술로 간주하며 폐쇄적으로 접근한다. AI는 명확한 법칙보다 경험적 검증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여러 시도가 불가피한 반면, 같은 시행착오가 여러 곳에서 반복되면 사회적 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기업이 가진 데이터나 모델을 완전히 오픈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완전한 개방 대신, 산업별 벤치마크 데이터셋 공동 구축, 표준화된 인터페이스 개발 같은 현실적인 협업 모델로 시작할 수 있다. 또 자사의 개발 모델을 내부에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 솔루션 형태로 사업화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강점 분야별 전문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적 협력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단순한 '몰아주기'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중복투자를 줄이고 전문성을 살리는 조정자여야 한다.

두 번째로, 도메인에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길러낼 필요가 있다. 제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은 단순히 모델을 다루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라이다 등의 센서, PLC와 같은 제어시스템, MES 등과 AI를 통합해 전체 AI 시스템을 기본 설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 차원의 엔지니어다. 요구 조건을 바탕으로 AI 성능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 요소들을 통합 설계할 수 있어야 AI 성능을 보장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모델 개발자, 제어 엔지니어,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서로 협업해 탄탄한 구현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하겠다.

MLOps 재학습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면서 데이터를 무작정 쌓는 것이 아니라 일정 개수의 가장 구분되는 데이터들만 남기는 데이터셋 자동 리프레시 기술을 접목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필터링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데이터 시스템 지식까지도 필요했던 것은 물론이다. 정부의 인력 양성 정책도 단순히 모델 성능을 높이는 연구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 시스템 통합 경험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이렇게 길러진 인력이야말로 현장에서 곧바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셋째, AI와 동시에 프로세스를 바꿔야 한다. AI는 100% 정확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아직 AI가 자신의 불확실성을 완벽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AI 하나로 현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진정한 성과는 AI의 불확실성을 고려한 프로세스 혁신에서 나오며 지속가능한 AI는 프로세스 변화를 반드시 수반한다. human-in-the-loop에서의 인간 역할 재설계, 판단과 제어에서 AI의 심각한 실수를 필터링하는 fail-safe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프로세스 변화에서 인간은 점점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요구 받기도 한다. 불량 검출 AI 시스템 구축 시, 검사자가 AI와 함께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레이블러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어 스스로 진화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례가 있다. 실제로 AI 자체의 성능보다 이러한 프로세스 혁신을 잘하는 기업이 더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앞으로 그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AI가 성과를 내려면 공정과 설비를 제어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므로 활용의 위험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국가 경제와 직결되는 만큼, 산업 AI 적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중요한 것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문제 해결 경험과 시스템 통합 역량이다. 제조 현장에서 AI가 진정한 성과를 내려면, 기술·프로세스·인력을 아우르는 실질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윤일용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 ilyong.yoon@poscod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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