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의 비약적인 발전은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 전 과정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개발 초기 단계인 전임상 시험 분야는 단순한 동물실험 수행을 넘어 데이터 기반 정밀 의과학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AI 도입으로 전임상 연구는 실험자의 주관 개입을 최소화하고 분석 정확성과 재현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또 시험 기간 단축, 비용 절감, 멀티모달 데이터 통합 분석을 통한 약물 반응 기전 예측 및 환자 맞춤형 치료제 후보 선별 등 다양한 이점이 확보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동물 사용 감소와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 제고로 이어지고 있으며, 글로벌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데이터 객관성 기준 충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AI 접목은 전임상 시험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케이메디허브) 전임상센터는 이러한 기술 흐름 속에서 AI 기반 행동 분석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신경계 작용 약물, 정신질환 치료제, 만성 통증 조절제 등에서 중요한 '행동 변화' 평가에 AI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는 숙련된 실험자의 관찰과 기록에 의존했으나 이는 관찰자의 주관 개입, 반복 실험 간 편차 등으로 인한 데이터 신뢰성 저하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접촉 영상 관찰 시스템과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실험동물의 이동 경로, 행동 반복, 사회적 상호작용, 수면·각성 주기 등 다양한 행동 데이터를 자동으로 측정·분석함으로써 데이터의 객관성과 재현성을 높이고 있다.
전임상센터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주요 퇴행성 뇌질환에 대한 설치류 모델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뇌질환 연구의 정밀성과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영장류 기반 질환 모델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러한 동물 모델 인프라는 AI 기반 행동 분석 플랫폼과 결합해 신경계 질환의 병태생리 연구, 약물 반응 평가, 장기 안전성 평가 등에서 전임상 시험의 신뢰성과 깊이를 한층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산되고 있다. 미국 NIH는 프로젝트(AI for Behavioral Phenotyping)를 통해 설치류의 자발적 행동 변화를 딥러닝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지원 중이며, 일본 RIKEN 연구소는 뇌질환 모델 마우스의 사회적 행동을 자동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유럽 제약사도 신약 후보물질의 중추신경계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AI 기반 행동 분석 솔루션을 상용화하고 있다.
병리학적 분석 분야 역시 AI 기술 접목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조직 세포 개수, 이미지 왜곡 제거 등을 위한 AI 병리 분석 소프트웨어(SW)를 개발 중이며 고도화를 통해 장기 투여에 따른 조직 독성 평가나 병변 판독 등에 활용, 기존 수작업 대비 속도와 정확도를 개선해 약물 개발의 안전성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임상센터는 또 실험동물의 건강 상태 평가를 위해 AI 기반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특정병원체부재동물(SPF)의 위생 관리와 미생물 감염 여부 점검을 위해 현재 배양된 미생물 콜로니의 '개수'를 자동 측정하는 AI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기존 수작업 판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적 오류를 최소화하고, 대규모 시험에서 반복적이고 방대한 미생물 검출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 사육환경 관리와 미생물 감염 예방 체계 구축에 기여할 것이다.
전임상센터는 AI, 자동화, 디지털 분석, 첨단 동물모델 시스템을 융합한 미래형 전임상 시험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K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국내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규제 대응력 강화를 동시에 지원할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AI가 주도하는 전임상 시험 환경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신약과 의료기기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임상 시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명훈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전임상센터장 mhchung0419@kmedihu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