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짜리 소개서만 보고 투자"…초기 스타트업 키운 네이버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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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환 D2SF 센터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D2SF 강남에서 열린 10주년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양상환 D2SF 센터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D2SF 강남에서 열린 10주년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법인 설립도 안 됐던 '퓨리오사AI' 팀인데 설계도도 없고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렀던 5장짜리 장표만 보고 투자했습니다."

양상환 네이버 D2SF 센터장(사진)은 13일 서울 서초구 D2SF 강남에서 열린 10주년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퓨리오사AI에 투자 결정한 뒷얘기를 이 같이 말했다. 퓨리오사AI는 네이버 D2SF가 시드 단계에서 투자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D2SF는 얼리 스테이지 스타트업뿐 아니라 프론티어 단계에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양 센터장은 "당시 주위에 있는 투자자나 지인들 모두 '스타트업이 어떻게 인공지능(AI)칩을 만들어'라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퓨리오사를 2016년 겨울에 만나서 이듬해 4월까지 3개월 동안 첫 번째 칩 스펙을 같이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D2SF는 성장 단계에 투자하는 일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과 달리 초기 스타트업(시드~시리즈A)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양 센터장은 그 이유 중 하나로 기술 기업이 한국에서 유니콘 기업이 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꼽았다.

양 센터장은 "한국에서 기술 스타트업을 잘 발굴하고 키울 수 있는 자본과 글로벌로 성장하기 위한 총알과 연료 탱크가 필요한데 그걸 키울 시장은 밖(외국)에 있다"며 "기술 시장에서는 이런 비용들이 더 많이 발생한다. D2SF는 스타트업이 북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반대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들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양쪽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브릿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D2SF는 스타트업의 북미 진출을 위해 지난해 10월 'D2SF US'를 실리콘밸리에 열었다. 더 큰 자원과 자본에 대한 접근을 끌어오기 위해서다. 양 센터장은 "자본을 지원하기 위한 그로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금 준비 단계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D2SF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투자 전략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원활한 협력을 위해서다. 양 센터장은 "투자사와 스타트업 사이에는 간극이 꽤 있다"며 "스타트업 입장에서 투자자는 주주인데, 주주는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고 스타트업에 때로 개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스타트업이 수익 실현을 시켜줄 도구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해 이러면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D2SF는 스타트업과 심리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6단계의 관계 전략을 마련했다. 네이버 안의 전문가를 끌어와서 같이 스타트업과 미팅을 진행하고 200억원 규모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수시로 교류한다. 가장 중요한 라포(상호신뢰관계) 형성 비결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양 센터장은 "화장실 가는 좁은 복도에서 수시로 대표님들과 마주친다. 그러면서 말을 트고 1년이 지나면 나중에는 어떤 대표님이 누구랑 소개팅을 했는지, 그 팀 안에서 어떤 썸이 일어나고 있는지까지 건너서 다 알게 된다"며 "라포 허들을 넘는 순간이 오면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네이버라는 법인과 스타트업 법인 사이에서 협력,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관계 중심의 전략은 성과로 나타났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D2SF와 활발하게 소통한 스타트업은 평균 18배의 기업가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2배에 그쳤다.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는 현재 5조2000억원 규모로 2021년 대비 약 4배 성장했다. 이 스타트업들의 생존율은 96%를 기록한다. 시드 단계에서 프리-A까지 도달하는 평균 기간은 18개월밖에 안 걸리기도 한다.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가 2021년 네이버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가 2021년 네이버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D2SF의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 테크타카와 무빈 모두 네이버와의 협력을 장점으로 꼽았다. 테크타카는 네이버쇼핑과 협력해 주 7일 '네이버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빈은 모션 캡처 솔루션 기업으로 네이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과 기술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수영 테크타카 대표는 "투자를 해주셨다는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네이버 사업부와 연결할 기회도 있었다"며 "현재 쇼핑에서 물류 배송으로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고 네이버라는 브랜드 자체가 투자를 받았을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최별희 무빈 대표는 "기업을 소개할 때 네이버 D2SF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기술적, 비즈니스적으로 회사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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