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발지로 남아있던 도성 동북부… 일제병합 전후 대형시설 터로 주목
기술 근대화 첫발 공업전습소 비롯… 日 근대의료기관 대한의원 세워져
1926년 4월 경성제국대 개교하며… 근대 교육시설 밀집 ‘대학촌’ 변모
《근대 ‘대학촌’ 대학로의 양면성조선 후기, 두 차례 전란의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한 한양은 한강을 따라 상업이 활기를 띠면서 점차 근대도시의 형태를 갖춰갔다. 사람과 물자가 모인 곳은 주로 한강 포구와 연결된 도성의 서남부였다. 포구를 따라 상권이 형성되고 교통의 중심이 한강 남쪽으로 확장됐다. 반면 창덕궁과 창경궁의 동쪽, 즉 도성의 동북부 일대는 도시화의 흐름에서 다소 비껴 있었다. 오늘날 서울 종로구 혜화동, 연건동, 이화동 일대다. 1900년대 초까지도 이 일대는 북쪽의 성균관과 그 남쪽의 반촌(泮村·성균관에 사역하는 노비 백정 등의 마을), 그리고 일부 양반 주거지를 제외하면 거의 미개발지였다.》
대한의원은 함춘원, 경모궁 자리에 들어섰다. 대한의원은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편됐다. 1926년에는 경성제국대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이어졌다. 현재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이 있는 자리다.
1910년대 들어 일제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기관을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선인의 민도(民度)’에 부합하는 초등 보통교육, 실업교육 중심의 교육 방침에 따라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억제했다. 그러나 식민지 행정과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무 인력 양성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등 3개의 관립전문학교를 동시에 설립했다. 관립전문학교는 고급 실무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오늘날 대학급의 교육기관을 말한다. 3개 학교 중 광화문에 들어선 경성법전을 제외하고 경성공전은 중앙시험소 부지 안에, 경성의전은 이화동 언덕에 자리 잡았다. 이어 1920년에는 역시 전문학교급인 경성고등상업학교가 혜화동 로터리에 세워졌다.1920년대 초 함춘원 일대는 근대 교육시설이 밀집한 일종의 ‘대학촌’으로 변모했다. 학교 주변에는 일본인 교원과 관리들을 위한 관사촌이 들어섰고, 학생들의 하숙촌도 형성됐다. 이 지역의 민족별 인구 구성은 청계천 북쪽의 다른 지역과 달랐다. 1925년 당시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 내 일본인 거주 인구 비율은 약 30%로, 경성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이는 북촌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높은 비율이었다.
“경성제국대학은 4월 1일부터 개학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우리의 희망도 많으며 감회 또한 많다. 하여간 동대학이 있는 것을 환영한다. 그 속에서 순진한 학자가 많이 나기를 바란다.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가 매우 복잡하게 되어서 처세하는 데 지식을 더욱 필요하게 되었으며 모든 것이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되게 되는 고로 기술의 발달이 필요하다. 경성대학 속에서 많은 기술가가 나기를 바란다. … 경성대학은 일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가지고 만족할 수가 어찌 있으랴? 우리는 더 한층 나아가서 우리 손으로 민립대학을 건설하여 우리 수재들을 교육하며 우리 학자들을 양성하여야 할 것이다.”(조선일보 1926년 4월 1일자)
1924년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에 예과가 먼저 개교했다. 당시 일본의 고등교육 제도에서 경성제국대는 모든 전공이 예과 2년과 본과 3년의 5년제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예과 개교 때까지도 본과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경성제국대 본과는 전문학교와는 달리 본관, 강의동 외에 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만한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광활한 부지를 쉽게 찾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본과 부지는 1925년에야 결정됐다. 총독부의원 부지 중 6만5000평을 대학 교지로 전환하고도 공간이 부족해 중앙시험소 뒤편의 3만여 평을 추가 매입해 캠퍼스를 조성했다. 이렇게 함춘원 일대는 근대 고등교육의 심장부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지식의 공간이 모두에게 희망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3·1운동기 일제 경찰의 조사 기록에는 만세시위를 준비한 경성전문학교 학생 대표단 20여 명의 이름이 나온다. 그 가운데 경성의전 한위건과 경성공전 김대우가 있었다.두 사람은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이후의 행로는 극명히 갈렸다. 한위건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이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1937년 옌안(延安)의 요양소에서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반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김대우는 체포돼 7개월간의 옥살이를 했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규슈제국대에서 공부한 뒤 1925년 졸업 후 일제 관리로 채용됐다. 28세에 군수로 승진한 그는 1937년 총독부 사회과장 시절 이른바 ‘황국 신민의 서사(皇國臣民の誓詞)’를 만드는 데도 관여했다. 광복 당시에는 조선인 관리로 최고직인 경북도지사 직까지 올랐다.
지금의 대학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근대의 학교이자 식민지의 실험장이었고, 청운의 꿈을 품은 수많은 조선인 학생이 30여 년간 거쳐간 곳이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인 조선인 학생들의 출발점은 모두 비슷했지만, 그 끝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너무나 달랐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고, 또 누군가는 제국의 체제 안에서 안정을 택했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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