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급이 지역마다 들쑥날쑥한 우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기업이 전기 사용 신청을 하면 전력망의 안정성 등을 따져 승인하는 전력 계통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 공급이 포화되거나 송전 인프라가 과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도 도입 이후 데이터센터 운영 목적으로 모두 290건의 신청이 접수됐는데 195건(67%)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들 데이터센터가 사용할 전기를 합치면 20GW(기가와트), 보통 원자로 1기 설비 용량이 1GW이므로 원자로 20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지금도 데이터센터 10곳 중 7곳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만약 기업의 신청을 다 들어주면 수도권 일대에 전력 마비를 불러올 것이다.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인력이 충분하고 고객이 두터운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싶어 하지만 이를 가동할 전력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세우면 수도권까지 그 망을 연결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지난해 전력 자립도는 서울 11.6%, 경기 62%에 불과하다. 전기가 남아 도는 지역도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북은 228%,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전남은 213%다. 생산만 되고 사실상 버려지는 전력이 8.9GW에 달한다고 한다(5월 기준). 상식적으로 이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면 될 테지만 곳곳이 가시밭길이다.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발전소, 변전소, 데이터센터를 잇는 송·변전 설비가 필요한데 주민 반대로 지연되기 일쑤였다.▷동해안 화력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동해안∼동서울’ 송전선로 280km 구간은 79개 마을 설득에 성공했지만, 마지막 종착점인 경기 하남시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공사가 중단됐다. ‘당진화력발전소∼신송산’ 송전선로는 당초보다 7년 6개월이 미뤄진 2028년 말 준공된다. AI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하면 느려도 너무 느리다.
▷최근 아마존과 손잡고 울산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발전소에서 가까운 곳은 전기료가 싸고, 거리가 멀수록 비싸져야 한다”고 했는데 일리 있는 제안이다. 결국 정부가 데이터센터를 분산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 에너지 병목을 풀 수밖에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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