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침체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코믹 액션물 '하이파이브'와 휴먼 드라마 '소주전쟁'이 6월 황금연휴를 겨냥해 동시에 개봉했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는 여전히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 차지하고 있다. 이 영화는 29일 기준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도전장을 내민 '하이파이브'는 '마약 사범' 유아인이라는 악재를 안고 있고, '소주전쟁'은 '현장 연출'로 강등된 최윤진 감독과 제작사 더램프가 각본 크레딧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면서 민사 본안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외부 경쟁과 내부 리스크가 겹친 가운데, 두 작품이 과연 한국 영화계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다.
◆ 웃음 타율 이게 무슨 일이야…지루할 틈 없는 '하이파이브'
'써니',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이 주특기를 가지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이파이브'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히어로물이 아닌,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에게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소시민 히어로물이다.
'태권소녀' 완서(이재인)은 오랜 병치레로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다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복학한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자 현재는 동네 태권도장 관장인 아빠 종민(오정세)의 과보호 속에 좋아하는 태권도도 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자신에게 폭발적인 괴력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완서는 폐를 이식을 받고 초강력 폐활량을 얻게 된 시나리오 작가 지성(안재홍), 신장 이식을 받고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는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 각막 이식을 받고 와이파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 간 이식 후 치유의 약손을 얻게 된 약선(김희원)을 만난다.
이들은 몸에 새겨진 표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팀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하지만 능력도 성격도 제각각이라 모이기만 하면 다툼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합지졸 히어로 군단 '하이파이브'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편 췌장을 이식받고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 박진영)은 자신만이 절대자가 되기 위해 나머지 이식자들을 찾아 모든 초능력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일 궁리를 한다.
'하이파이브'는 장기이식을 받은 후 초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식된 장기에 따라 괴력, 스피드, 폐활량, 치유력, 전자기파 조종 등 각각의 초능력을 달리해 재미를 이끈다.
영화는 비현실적 설정에 현실적인 정서를 접목, 한국 관객들의 감성과 유머 코드를 저격한다. 강형철 감독 특유의 박자감 있는 연출과 이재인, 라미란, 안재홍,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등 연기 내공 깊은 배우들의 개성이 더해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아찔한 야쿠르트 카트 체이싱 신과 안재홍의 야쿠르트 폭탄, 이재인, 박진영의 스피디하고 타격감 넘치는 액션 또한 이 영화의 주요 볼거리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유아인은 지난 3월 개봉작 '승부'에 이어 이번에도 주요 역할로 등장한다. '돌부처' 이창호 9단을 연기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명품을 휘두르고 손가락 스냅을 튕기며 리듬감 있게 걷는 힙스터 '기동' 역을 맡았다.
그는 안재홍과 함께 티격태격하는 유쾌한 호흡을 선보인다. 특히 두 사람의 인공호흡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줄 포인트다.
유아인의 출연 분량은 편집되지 않은 채 거의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캐릭터를 놓고 봤을 때 유아인은 기동에 '적역'이다. 이토록 허세로운 캐릭터를 또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다행인 점은 유아인이 원톱 주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영화가 아니다"라는 강 감독의 말처럼 유아인이 앙상블을 이루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도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요인이다. '승부'가 214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동원하며 손익분기점 넘기기에 성공한 만큼 '하이파이브'도 무사히 흥행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 누군가에겐 씁쓸, 누군가에겐 단데? '소주전쟁'
'소주전쟁'은 '하이파이브'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졌다. 유쾌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배우 유해진이 주연을 맡아 웃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방향의 감정을 건드린다.
'소주전쟁'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깊이 있게 다뤄진 적은 없었던 한국인의 소울푸드 '소주'라는 매개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영화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진로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1997년 진로그룹이 부도가 난 후 골드만삭스는 진로그룹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2년간 매집한 끝에 최대 채권자가 된다. 이 사건은 한국 기업에 교훈을 던져준 사례다. 극 중 진로는 '국보'로, 골드만삭스는 '솔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국보소주가 자금난에 휘청거리자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인범(이제훈)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인범은 국보소주 매각을 위해 회사에 접근하면서 국보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을 만난다.
종록은 무너져가는 회사를 지키겠다는 강한 책임감과 신념으로, 인범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손을 잡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가치관을 드러낸다. '회사는 인생의 전부'라는 종록과 '회사는 돈 버는 곳'이라는 인범의 세계가 충돌하고 또 연대하며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소주전쟁'은 단지 두 주인공만의 드라마가 아니다. 손현주는 국보그룹의 후계자 진우 역으로 등장,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는 인물로 분해 탐욕과 몰락의 전형적인 상징을 그려낸다. 관객들은 그의 선택과 최후를 보며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영화 '빅쇼트', '스카이스크래퍼' 등 굵직한 할리우드 작품에서 활약해온 바이런만도 출연했다. 그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홍콩 본부장 고든 역을 맡아 이제훈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그는 "한 나라의 문화, 가치, 사람들의 생각, 한 나라의 자산에 대한 영화"라며 "이렇게 중요한 영화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술을 한잔하게 된다면, 종록의 삶이 맞는 것인지, 인범의 삶이 맞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을 것"이라는 유해진의 말처럼 '소주전쟁'은 해답없는 삶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곱씹어볼 만한 메시지와 주제에 몰입해 사유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작품이다.
한편 '소주전쟁'은 연출을 맡은 최윤진 감독과 제작사 더램프가 크레딧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이어가면서 이례적으로 감독 자리가 비워진 채 개봉하게 됐다. 최윤진 감독은 자신을 감독 자리에서 해고한 것이 부당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감독 계약 해지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더램프 측은 최 감독의 각본이 원작자의 시나리오를 탈취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최 감독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최종 영화 크레딧에서 그를 감독이 아닌 '현장 연출'로 기재했다. 최 감독은 시나리오를 탈취하지 않았다고 반론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가처분 신청도 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