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트럼프發 '안보 패러다임 시프트' 대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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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칼럼] 트럼프發 '안보 패러다임 시프트' 대응법

위아래가 뒤집힌 주한미군 교육용 지도는 미국의 ‘안보 패러다임 시프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택 미군기지를 기점으로 도쿄, 베이징, 타이베이, 마닐라, 평양이 직선거리로 표시돼 있다. 평양은 잘 안 보이고, 대만이 훨씬 크게 잡혔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 지도를 보지 않으면 왜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주한미군을 중국의 대만 침공 대응 등에 활용할 것임을 공표한 것이다.

미국의 전략 변경에는 급격한 중국 무력 증강이 자리하고 있다. 2000년께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군사 접근을 막아 주도권을 가지려는 중국의 ‘반접근·지역 거부(A2AD)’ 전략이 부각됐을 때만 해도 월등한 미국의 군사력 앞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수년 전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은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핵탄두를 350기에서 2035년 1500기로 늘릴 전망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대 수는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 미국의 전투함 건조 조선소는 2차대전 후 45곳에서 2곳으로 확 줄었다. 반면 중국은 100여 곳에 달한다. 중국은 전투함 수에서 미국을 추월했고, 그 차이는 커지고 있다. 미국은 심각한 재정적자로 소련 해체를 불러온 군비 경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5%를 요구하는 이유다.

주한미군 전력 감축, 이전은 거스를 수 없게 됐다. 주한미군 사령관 지위가 격하돼 주일미군이 중심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지난 3월 ‘잠정 국방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과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다른 위협은 동맹국들에 맡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다음달 국방전략에서 이게 확정되면 북한 대응은 핵심에서 비켜나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약화를 가져온다. 주한미군 수가 줄곧 감축돼 온 것을 감안할 때 이런 흐름은 안보 자주파가 득세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나면 원위치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게 낫다.

핵심 동맹도 관세 압박 본보기로 삼고, 안보도 더 이상 자비로운 미국이 없는 냉혹한 자기 이익 중심 시대를 맞아 자강(自强)은 필수다. 트럼프의 국방비 5% 요구는 과도하지만,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미국 내에선 경제 대국 한국이 군 병력과 병사 복무 연한을 줄이는 등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는 불만이 많다. 20년 전 GDP 대비 국방비가 2.5%였는데, 북한이 핵무기 수십 기를 보유한 지금 2.3%로 오히려 줄었다. 일거에 국방비를 GDP 5%로 맞추는 것은 어렵지만, 늘려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2020년대 국방비 연평균 증가율이 4.6%인데, 5.5~6% 정도로 올리면 2035년에 GDP의 3.5%까지 맞출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무전기, 제트엔진, 애니악 등 국방 부문 기술이 민간 발전의 초석이 된 것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기왕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면 방위력 개선 도모는 물론 국방 연구개발(R&D)과 소프트웨어 분야 투자 확대로 우리의 약점인 방산 고부가가치 기술 국산화를 이루는 계기로 삼아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터무니없지만 핵 잠재력 확보, 관세 등과 엮어 우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교한 ‘그랜드 바겐 전략’을 짜야 한다.

일본이 주도하고 미국이 뒷받침하는 ‘아시아판 나토’ 결성도 주목할 만하다. 가치 공유 나라들이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을 하나의 전역(戰域)으로 묶어 방어하자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이다. 대중 견제에 치중할 수 있어 한국 참여는 섣부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핵우산을 미국에 기대는 현실, 일본이 월등한 북한 핵·미사일·잠수함 탐지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판 나토 구상 참여를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한·미가 2014년 전작권 전환을 검토하기로 한 때에 비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대폭 강화됐다. 전쟁 발발 시 북핵 대응 작전이 최우선이 되고, 이는 미군만이 할 수 있다. 지휘통제, 대북 독자 방어 역량 확보 조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산 심사 때마다 지역 민원, 복지 예산 증액을 위해 전력 증강비를 줄이는 구태로는 안보 자강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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