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우 ‘전지적 독자 시점’
나만 알고 있는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된다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다. 갑자기 달리던 지하철이 동호대교 위에서 멈춰서고, 도깨비라 불리는 이상한 형체가 등장해 다짜고짜 게임을 제시한다. 제한된 시간에 생명체 하나를 죽이라는 것.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죽는 걸 알게 된 승객들로 인해 지하철은 아비규환이 된다. 그런데 마침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던 김독자(안효섭)는 그 상황이 자신이 읽은 소설과 똑같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는 어떻게든 함께 살아갈 길을 열어간다.
싱숑의 웹소설이 원작인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른바 ‘회귀물’의 색다른 버전이다. 10년간 연재된 소설을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독자가 그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된 상황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어 이에 대처하는 회귀물 특유의 서사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인공의 욕망이 이례적이다. 보통 회귀물들의 주인공들은 당한 만큼 되돌려주려는 복수를 욕망하지만, 김독자는 모두가 죽고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한 사람만 살게 되는 그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혼자라면 바꿀 수 없었을 소설 속 내용들을 여럿이 함께 바꿔 나가기 시작한다.“내 동료들과 함께 이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쓰겠다.” 김독자의 이 같은 선언은 최근 작가(창작자)만큼 중요해진 독자(수용자)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작품은 독자들에 의해 재생산되기도 하고 때론 독자의 참여로 완성되기도 한다. 이건 정치도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보다 시민들이, 생산자들보다 소비자가 중요해진 시대가 아닌가. 혼자가 아닌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해야 하는 시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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