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수표 안 되는 은행[횡설수설/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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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돈이 없다’는 말이 모순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 현금다발이 쌓여 있어야 할 은행 금고에 서류 뭉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영업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캐시리스(cashless) 점포’다.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한국씨티은행은 서울 강남대기업업무센터에서 현금과 실물 수표 취급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해당 창구에서는 현금 입출금은 물론 수표 접수와 처리조차 할 수 없다. ▷무현금 점포는 금융권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앞서 2019년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iM뱅크, BNK부산은행 등도 실물 화폐를 없앤 디지털 특화 점포를 잇달아 열었다. 대면 거래 비중이 급감한 모바일 뱅킹 시대를 맞아 인건비와 현금 보관 및 관리에 드는 고정 비용을 줄여 경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전국 은행의 자동화기기(ATM)는 최근 4년 새 4600개 넘게 사라졌고 영업점 통폐합도 가속화하고 있다. ▷효율성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소외가 자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의 월평균 현금지출은 전체 지출의 17.4%였지만, 70대 이상 고령층은 현금 비중이 32.4%, 월 소득 100만 원 미만 저소득층은 60%에 육박했다. 카드가 없으면 승차를 거부당하는 ‘현금 없는 버스’나 주문조차 버거운 ‘키오스크 카페’에 치이던 디지털 약자들은 이제 돈을 맡기고 찾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위협받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캐시리스 사회’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현금 선택권과 현금 접근권을 함께 보장하려는 추세다. 과거 은행에 현금이 없어 강도가 빈손으로 발길을 돌린 일이 있었을 정도로 디지털 전환이 빨랐던 스웨덴에선 2020년부터 일정 예금 규모 이상의 상업은행에 대해 현금 입출금 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했다. 영국에선 은행 점포를 폐쇄할 때 주민 불편이 없도록 은행 공동 점포 등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현금 접근권(access to cash)’ 제도를 202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선 13년 만에 은행 오프라인 점포가 늘어났다. 지점을 비용 감축 대상이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장기 신뢰를 구축하는 자산으로 재평가하는 은행들이 등장한 결과다. ▷은행은 국가로부터 특별히 인가를 받아 법정 화폐의 유통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수익성 논리로 점포를 폐쇄하고 현금 취급을 멈추는 것을 일반 기업의 원가 절감 노력과 동일 선상에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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