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을 꾼다. 잠결에 스쳐 가는 순간일 때도 있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청년 창업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스타트업의 꿈은 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비상장 기업 ‘유니콘’이 되는 것이다. 관악의 청년 창업가들도 그 꿈을 안고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청년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서울대가 자리한 지역이어도 관악은 오랫동안 베드타운이라는 이름에 머물러 있었다. 사법시험이 폐지된 뒤 고시촌 상권은 예전 같지 않고 한때 학생들로 붐비던 골목은 적막해졌다. 서울시의원 시절에도 주민이 가장 많이 건넨 말은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구청장에 취임한 뒤부터 스스로 ‘경제구청장’이라고 불렀다. 자치구에서 경제를 앞세우는 일이 흔치는 않지만 관악의 미래는 결국 경제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실리콘밸리를, 중국 칭화대가 중관춘을 만들었듯 서울대와 함께라면 관악도 혁신 창업 도시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청년 일자리와 미래 산업이 살아야 지역 경제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믿음으로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을 찾아가 “관악을 벤처 창업 도시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대학이 뜻을 함께하며 손을 잡아 ‘관악 S밸리’가 출발했다. 작은 시도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 개 청년 기업이 터를 잡고 있다. 일부는 해외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은 필수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참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년 기업은 이 무대에서 기술과 아이디어를 세계에 알리고 해외 바이어와 투자자를 만난다. CES는 글로벌 시장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관악 S밸리에는 햄버거 패티를 굽는 인공지능(AI) 조리 로봇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 수면 음료로 아마존에 입점한 창업가도 있다. 서로의 경험이 이어지고 쌓일수록 관악에는 더 많은 창업가가 모이고 지역 경제도 활기를 되찾는다. 얼마 전 서울대 캠퍼스 ‘창업히어로’에서 출발해 CES 혁신상을 받은 AI 농업 로봇 기업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관악에서 창업하길 잘했다”는 짧은 소감이 유난히 반가웠다.
이런 성과가 계속되려면 행정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관악중소벤처진흥원을 세우고 창업 허브와 낙성대공원에 거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창업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기업이 자라고 청년이 일하며 소비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자라난다.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와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 기반이 단단해질 때 머지않아 ‘한국의 유니콘 기업이 관악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