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취임 후 주력해온 관세 정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환율 전쟁을 선언했다. 정책 전환의 상징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이 성역으로 간주해온 미국 중앙은행(Fed)을 방문했다. 외형상으로 Fed 청사 개보수 현장을 둘러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금리 인하’로 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의장 간의 금리 갈등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요구를 쉽게 수용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전원은 1선 목표인 물가 안정을 이유로 거부했다.
권력 교체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두 사람의 갈등은 작년 대선 과정에서 다시 불거졌다. 트럼프 후보는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금리 인하 불가론을 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작년 9월 열린 FOMC 회의에서 보란 듯 두 단계나 ‘빅컷’을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불가 요구는 취임 후 금리 인하 요구로 돌변했다. FOMC가 열릴 때마다 금리 인하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 폭도 커져 올 7월 회의를 앞두고선 연 1%로 낮춰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방문이 파월 의장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와 관련해 다양한 시각이 나오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차기 의장을 조만간 지명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확산하고 있다. 파월 의장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할 후보를 택할 확률이 높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인터뷰를 마친 네 후보의 어조 지수를 산출하면 케빈 워시 전 Fed 이사가 가장 친트럼프 성향으로 나온다.
코인업계를 중심으로 이번 방문이 Fed의 통화 주권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한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려면 200년 전의 자유 은행(free bank)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자유방임주의에 편승해 앤드루 존슨 전 대통령은 어떤 은행이든 담보만 있으면 달러를 발행할 수 있다는 자유 은행 시대를 선언했다. 법정화폐의 종말을 예고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자유 은행의 프레임워크와 비슷하다. 달러화와 태환성을 보장하는 담보만 있으면 금융사, 기업 가릴 것 없이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서다. 오히려 반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법으로 Fed의 디지털 통화 주권까지 틀어막아 200년 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노믹스 2.0을 이끌어가는 양대 축은 ‘미란 보고서’와 ‘프로젝트 2025’다. 전자는 관세를 통해 시급한 재정적자와 국가 채무의 불을 끈다는 것이 골자다. 후자는 Fed 개편을 전제로 저금리와 약달러를 유도해 잃어버린 제조업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 토대 위에 감세와 재정 지출로 위대한 미국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마가의 구상이다.
트럼프노믹스 양대 축의 수순대로라면 다음달부터 환율 전쟁이 본격화한다. 때맞춰 트럼프 대통령은 약달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면한 국가 채무를 줄이고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사가 Fed 흔들기로 경색될 달러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여건에서 약달러를 유도하기 위해선 금리를 내리는 길밖에 없다.
아직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약달러 유도로 원화 절상까지 겹칠 확률이 높다. 감세 등을 통해 내수를 부양하는 동시에 수출 다변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확실한 목표와 실행 수단이 잘 조화를 이루는 트럼프노믹스에선 배울 점이 많다. 증시 정책만 하더라도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잘해 놓고 증세를 추진하면 어떻게 ‘코스피지수 5000’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 답은 ‘NO(아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