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이변 시대, 안전기준 다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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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후이변 시대, 안전기준 다시 세워야

폭우가 지나자 곧바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이변이 상수가 된 지금, 한국 사회의 인프라 취약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최근 발생한 경기 오산 고가도로 옹벽 붕괴 사고는 그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고 전 도로 침하와 균열, 누수 흔적이 신고됐지만 실질적인 안전 조치는 없었다. 사고 후 옹벽은 파란 덮개로 가려지고 흙더미에 깔린 차량은 방치돼 있었다. 호우 대비를 위한 조치라지만 그 파란 덮개는 ‘위기를 임시로 가려두는 땜질식 안전관리’의 상징처럼 보였다.

이제 사후 처벌 중심으로는 안전사회를 만들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반이 지났지만 정작 재해 감소 효과는 미미하다. 경영 책임자 개인에게 과도한 형사책임을 부과하면서도 기업 차원의 예방 투자와 시스템 개선을 끌어낼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보니 법적 방어를 위한 ‘보고와 형식적 점검’만 늘고 실질적 재해 예방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 안전 기준을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단순한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재해를 줄이지 못한다. 중대재해처벌법 구조 개편을 시작으로 예방 중심 시스템과 민관 협력을 결합한 새로운 안전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자연인(경영 책임자)에게 책임을 집중시킬 게 아니라 법인(회사)에 대한 실질적 제재 강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과징금, 공공입찰 제한 등으로 기업의 예방 투자와 시스템 개선을 이끌어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참고한 영국 ‘기업살인법’의 취지와도 부합한다. 아울러 예방 조치와 개선 계획을 성실히 이행한 기업에는 면책·감경을 적용해 법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개선과 예방을 촉진하는 제도로 작동해야 한다.

둘째, 민간 전문기관이 참여하는 외부안전감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형식적 점검이 아니라 위험성 평가 결과와 개선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한 심층 감사가 필요하다. 감사 결과는 경영평가·보험료·세제 혜택과 연계해 기업의 행동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셋째, 중대재해가 집중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집중 관리해야 한다.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이들 사업장에 안전교육·훈련, 스마트 모니터링, 재정 지원을 강화해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넷째, 원·하청 통합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하청의 안전이 원청의 비용 절감에 희생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안전 예산과 책임을 공동 부담하고, 통합된 위험성 평가와 안전 계획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부터 최저가낙찰제를 과감히 폐지해 가격 경쟁이 안전을 훼손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아우르는 통합 안전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처벌법과 균형을 이루는 ‘안전문화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범국가적 안전교육과 안전문화 운동을 체계화하고, 안전명장 및 안전인 경력 관리 제도화, 안전인회관 건립 등으로 안전문화 확산을 뒷받침해야 한다.

‘땜질식 안전’에서 ‘예방 안전’으로, 그리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는 안전관리로의 대전환은 실용주의 정부라면 외면해서는 안 될 국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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