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다뒤’라는 유행어를 들어보셨는지. 아침부터 신문에서 비속어를 보게 해 죄송하지만, ‘감이 다 뒤졌다’는 뜻이다. 제품이든 기업이든 연예인이든 트렌드에 뒤처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요새 가차 없이 이 딱지가 붙는다. 천하의 애플과 유재석조차 싱크대를 닮은 아이폰과 식상한 음악 예능을 들고나온 순간 감다뒤 소리를 들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대한민국을 시끌시끌하게 한 카카오톡 개편도 전형적인 사례가 되겠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비스무레하게 따라가려다가 ‘업데이트 거부 운동’과 ‘탈퇴 러시’를 자초했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잘못짚고 메신저의 본질을 놓쳤다는 혹평을 받았다.
촉을 잠깐 잃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오는지 훨씬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은 K뷰티 시장이다. 상장사는 주가와 시가총액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때 178만원을 찍었던 LG생활건강 주가는 6분의 1토막 난 상태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5위까지 갔던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75위다. 두 달 전에는 화장품주 시총 1위가 에이피알로 교체됐다. 잠깐의 이변 아닐까 싶었는데 대장주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에이피알은 1988년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한 회사로, 이것저것 실패하다가 화장품 사업에 안착한 사례다. 업력이 80년 된 아모레퍼시픽, 77년 된 LG생활건강의 부진의 골이 더욱 깊어 보이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두 회사 뉴스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10년 전 소비재 담당 기자일 때 지켜본 그들의 전성기는 너무나 화려하고 굳건했기 때문이다.
아모레는 파죽지세의 설화수 한 브랜드로만 연 매출 1조원을 올렸다. 중국은 확실히 잡았고, 다음으로 북미와 유럽 점령에 도전한다고 했다. LG생건은 ‘또 사상 최고 실적’ 기사를 쓰는 게 지겨울 정도였다. 후라는 브랜드는 롯데면세점 소공점의 33㎡짜리 자그마한 매장에서 매달 1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세계 어느 면세점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던 롯데 대표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아모레와 LG생건의 1·2위 경쟁이 관심이었지 둘 다 허우적대는 상황을 상상하진 못했다.
그랬던 두 회사가 왜 늪에 빠졌는지 원인 분석은 마무리돼 있다. 중국에서는 애국 소비 열풍 탓에 K뷰티 인기가 꺾였고, 다른 나라에서는 개성 있고 저렴한 인디 브랜드에 열광하고 있다. 두 ‘화장품 공룡’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매여 대응 속도가 더뎠다는 것이다.
사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런 사후적 평가는 자의적인 면도 있다. ‘메가 브랜드’와 ‘중국 집중’ 전략은 아모레와 LG생건이 잘나가던 시기엔 찬사를 받았다. 토스 출신이 밀어붙인 카카오톡 개편 역시 반응이 좋았다면 ‘과감한 외부 수혈을 통한 혁신’으로 평가받았을 터다. 야박해 보이지만, 결국 성과가 모든 걸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아모레? LG? 올드해!”라는 젊은 소비자들의 인식을 돌려놓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선택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아모레는 세계 곳곳의 적자 매장을 도려내며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LG생건은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조기 교체하고 로레알 출신을 영입하는 강수를 뒀다.
감 떨어진 기업이 뒤처지는 건 어찌 보면 좋은 일이다. 유능한 기업이 계속 등장해 주기적으로 물갈이가 이뤄진다면 산업이 건강하다는 의미다. 다만 ‘올드한 이미지’가 돼버린 전통의 화장품 회사가 보란 듯 부활해줬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신생 K뷰티 주자는 쉽게 얻지 못할 소중한 자산이 풍부한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아모레와 LG생건은 수입 개방 이후 토종 화장품이 싹 망할 뻔한 1990년대를 슬기롭게 극복한 저력이 있다. 화려한 광고판에선 보이지 않아도 뒷단의 치열한 연구개발(R&D)은 어느 업종에 뒤처지지 않는다. 두 회사 사업장을 구경하다 보면 ‘화장품 회사에 이런 게 있나’ 싶은 것이 적지 않았다. 건물 안에 아파트 욕실과 백화점 매장까지 떼어다 놓고 색감, 용기, 진열법을 고민하던 모습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감다뒤의 반대말로 ‘감다살’이라는 것도 있다. ‘감이 다 살아났다’는 칭찬의 표현이다. 되짚어 보면 10년 전 미래가 안 보인다는 소리를 듣던 회사 중에 삼양식품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라면을 만들고도 만년 2위로 망가진 회사, 주가가 2만원에서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던 회사. 불닭 시리즈의 반전 드라마는 그때 절치부심의 결과물일 것이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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