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전 일이다. 한 외신 기자가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묘한 기분에 빠졌다. 그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신과 닮은 3차원(3D) 아바타를 만든 뒤 하루를 통째로 대신 살아보게 했다. 외모부터 음성까지 완벽하게 복제된 ‘가상의 자아’는 취재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정리해 스크립트까지 뽑아냈다. 심지어 가족과의 안부 연락과 인증이 필요한 텔레뱅킹 업무까지 막힘없이 해냈다. 그 빈틈없는 효율성 앞에서 어느새 거대한 물음표가 그려졌다. ‘인간 기자’의 존재는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인류가 기술 앞에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은 많다.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최초의 카메라를 선보였을 때도 화가들은 절망에 빠졌다. 찰나의 진실을 화폭보다 정교하게 포착하는 기계 앞에서 인간의 붓질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지금의 AI 소용돌이는 그때보다 훨씬 거대하고 입체적이다. 인간이 기계의 속도를 이기려는 노력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특히 디자이너에게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 알고리즘이 단 몇 초 만에 수백 개의 시안을 쏟아내고, 숙련된 편집자의 영역을 디자인 툴이 대체하는 시대. 과연 우리는 이 기술의 파도에 잠식당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막막한 질문에 대한 우아한 해답을 지난주 막을 내린 ‘밀라노디자인위크(MDW 2026)’에서 엿볼 수 있었다.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가 집결한 이곳에서 그들이 내놓은 키워드는 역설적이게도 ‘첨단’이 아니라 ‘수고로움’이었다. 보테가 베네타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꼬아 만든 가죽 공예의 질감을 전면에 내세웠고, 로로피아나는 캐시미어 위에 새겨진 미세한 요철을 거대한 캔버스로 펼쳐놓았다. 북유럽 가구 브랜드 무토는 매끈한 금속 냉장고 표면에 일부러 따뜻하고 울퉁불퉁한 질감의 소재를 덧댔다. AI가 계산할 수 없는 미세한 손 떨림, 수작업 특유의 투박한 온도, 만지는 순간 지문을 자극하는 불완전한 표면들. 그들은 AI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번거로운 과정과 손끝의 감각 그 자체를 럭셔리의 새로운 정의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런 ‘의도된 비효율’은 우리 일상에서도 목격된다.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최적의 콘텐츠와 해답을 내놓는 시대에, 젊은 세대는 오히려 무작위성이 주는 우연한 만남과 아날로그를 찾는다. 감자튀김을 나눠 먹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불러내거나, 같은 공간에서 대화 없이 각자의 업무만 진행한 뒤 헤어지는 엉뚱한 번개 모임이 성행한다. 작은 책방의 묵직한 공기를 느끼며 종이책을 넘기는 행위를 ‘텍스트 힙(text hip)’이라 부르고, 터치 몇 번이면 끝날 기록을 위해 굳이 무거운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한다. 알고리즘의 렌즈로 보면 명백한 오류나 낭비에 가까울 수고로움을 기꺼이 택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가상 세계가 타인의 체온과 숨소리, 손끝에 닿는 감각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AI의 비약적인 진화는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의 기회를 선사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외신 기자의 AI 아바타는 정말 완벽한 하루를 살아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정체는 의외의 지점에서 탄로 났다. 줌(zoom) 화상 회의에 참석한 아바타는 유창한 논리로 대화를 주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은 이질감을 느꼈다. 이유는 단순했다. “평소와 달리 유머가 없었다”는 것.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던 AI는 대화 사이 ‘웃음’과 ‘여유’라는 인간 특유의 의도적 비효율성까지는 흉내 내지 못했다.
모든 전문직이 불안에 떠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사람의 힘을 믿고 싶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술은 쉬지 않고 정답을 향해 질주하겠지만, 인류 역시 끊임없이 ‘인간다움’의 농도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등장한 지 190년이 흘렀어도 주관적인 빛의 해석과 감각적인 터치가 여전히 유효한 예술로 살아남은 것처럼 말이다.
기술은 매끈한 해답을 내놓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AI의 해법은 빈틈없지만 인간은 그 틈새의 요철에서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우리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그 사소한 비효율들이 ‘인간다움’의 마지막 근거일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AI를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반격이 아닐까.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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