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고차 수출 시장 망가뜨리는 주범

“해외에서 중고차 주문이 많아 무조건 팔고 있는데 그 차량이 대포차인지 도난차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서울 장한평 중고차매매단지에서 만난 한 중고차 수출 업체 대표는 솔직했다. 그는 “수출 차량 중 과거 이력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매년 국내에서 도난차만 수천 대 나오는데 상당수가 수출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법 차량이 수출되는 배경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중고차 수출업이 면허가 필요 없는 자유업종에 속해 정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 인허가 없이 사업하기 때문에 중고차 수출 기업에 대한 정부 통계조차 없다. 수출차 품질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던 ‘수출 예정 증명제’도 사라졌다. 과거 지방자치단체가 수출 중고차 상태를 점검해 인증해주던 제도였지만 규제 완화 명분으로 2014년 폐지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 중고차가 1년에 20만 대 안팎 수출되던 때였다. 게다가 대부분 연식이 오래된 차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고차가 연간 60만 대 이상 수출되고 있다. 상당수가 출시된 지 10년 이상 지나 차량 이력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중고차 수출 업체들이 “대포차와 도난차가 활개 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수출 차량은 성능을 점검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맹점으로 꼽힌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국내에서 판매되는 중고차는 성능·상태 점검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반면 수출 중고차에 대해선 성능 점검 규정이 따로 없다. 대포차와 도난차뿐만 아니라 침수·사고 차량 등도 성능 검사 없이 수출되거나 부품을 떼어내 해외에 팔아도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수출 중고차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일본에서 중고차를 수출하려면 일본자동차사정협회와 일본중고차수출업협동조합이 발급하는 자동차검사증명서(JEVIC)를 발급받아 세관에 제출해야 한다. 중고차 부품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중고차를 해체해 부품을 수출하려면 일본 경제산업상의 허가를 받은 ‘해체업’ 면허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잘못된 중고차를 수출하면 그 피해는 중고차 업체뿐 아니라 자동차 관련 업계가 모두 보게 된다”(정일수 중고자동차수출입조합연합회장)는 우려를 경청하지 않는다. 중고차까지 확산한 K자동차 열풍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뒤늦게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중고차 수출업 등록제 전환’ 등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본격 논의되고 있지 않다. 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