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제2의 외환위기' 터지면 어느 부처가 책임질 수 있을까

1 month ago 14

[취재수첩] '제2의 외환위기' 터지면 어느 부처가 책임질 수 있을까

“미국의 투자 압박 때문에 환율이 치솟고 있는데 경제 컨트롤타워의 힘을 빼놓으면 위기 대응은 누가 할지 불안하네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3500억달러 투자는 선불(upfront)”이라고 못 박은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를 열고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기능을 분리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한 채권시장 전문가가 한 말이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최약체 경제사령탑이 탄생했다. 경제정책 3대 핵심 수단으로 불리는 재정, 금융, 세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부총리 부처인 재정경제부에는 세제 기능만 남아 ‘세제경제부’라는 별칭까지 나왔다.

하지만 대외 상황은 한국의 최약체 사령탑을 배려해 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할 경우 4100억달러 수준인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곧장 바닥을 드러낸다. 이재명 대통령도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외환시장은 이런 우려를 곧바로 반영했다. 원·달러 환율은 26일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뚫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위기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 컨트롤타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통화스와프 협상을 하고,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고, 기업 구조조정 등의 실무를 모두 조율한 주체가 기재부였다. 2008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지난 코로나19 때 중소벤처기업부·고용노동부와 신속히 정책을 조정해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짜내고, ‘K방역’을 위해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청에 빠르게 예산을 지원하고, 행정안전부와 협업해 긴급재난지원금을 편성한 것도 기재부다.

이번 조직 개편은 그런 기재부의 손발을 잘라냈다. 한 기재부 과장은 “당장 다음달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부터 부처 간 입장이 조율되지 않고 삐그덕거리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며 “정책 비효율성은 둘째치고 위기 대응 능력까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한 행정구조 조정이 아니다.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설계도를 다시 짜는 일이다. 경제위기 발생 시 컨트롤타워 작동 방식을 결정짓는다. 일개 기업의 인수합병(M&A)도 수차례 검토와 자문을 거치는데, 국가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조직을 잘못 개편했다간 위기 대응은커녕 위기 진원지가 정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한 1994년 조직 개편 때문에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원로들의 경고를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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