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쟁에 뒷전으로 밀린 '동해 심해가스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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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정쟁에 뒷전으로 밀린 '동해 심해가스전' 사업

“세계 3대 메이저 에너지 기업이 우리나라 심해 가스전 개발에 참여한 건 한국 자원개발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마감된 동해 심해 가스전 2차 탐사시추를 위한 국제 입찰에 유럽계 에너지 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참여 소식이 알려진 뒤 자원개발 업계와 학계가 내놓은 반응이다. 심해 탐사시추 경험이 없는 한국이 지난 30여 년간 11개 심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BP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심해 정보를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수백 개의 시추공을 뚫으며 우리 해역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BP 참여를 통해 자원개발 기술력을 배우고, 해양 주권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기미가 없어서다. 국제 입찰에서는 보통 3~4주 만에 우선협상자를 선정한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우선협상자 결과 보고서 제출 기한을 16일로 잡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입찰 참여 기업들이 한국석유공사와 자문사인 S&P글로벌에 선정 결과를 반복해서 문의해도 “선정 작업 진행 중”이란 답변만 되풀이한다는 설명이다.

우선협상자 선정이 미뤄지는 것은 동해 심해 가스전 7개 유망구조 중 한 곳인 ‘대왕고래’와 관련한 정치적 논란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한 뒤부터 줄곧 정쟁의 소재로 쓰여 왔다. 10월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되면서 대왕고래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까 우려한 산업통상부와 석유공사가 우선협상자 선정을 미루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석유공사 경영진이 대왕고래 프로젝트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7개 유망구조 가운데 첫 시추 대상인 대왕고래에서는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나머지 유망구조는 추가 시추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BP가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프로젝트 관련 자료 열람을 요청한 시점은 지난 6월 3일 대선 이후로 알려졌다. 대통령 탄핵으로 치른 조기 대선 결과를 지켜보고, 사업의 안정성을 확신했기 때문에 입찰 참여를 결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선협상자 선정이 미뤄질수록 BP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 ‘한국은 정쟁 때문에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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