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 나서 지사제 찾으러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손님이 많아요. 명절이나 주말 밤에 특히 그렇습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지난 28일 만난 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상비약 리스트에 없는 의약품을 찾을 때 제일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최장 10일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13년째 품목 확대가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육아 때문에 응급실은 못 가는데 편의점에 위장약 팔까요?’ ‘아이가 뜨거운 물에 손을 덴 것 같은데 밤에 화상연고 어디서 파나요?’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안전상비약은 해열·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파스 등 4개 효능군 11종이다. 국내 일반의약품이 4813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극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지난 22일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발표한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7%가 상비약 품목 확대 또는 교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약사단체는 공공심야약국 확대가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약국 2만5276곳 중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공공심야약국은 254곳으로 전체의 1%에 불과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는 2012년 약사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13개 품목을 발표하면서 시행 1년 후 품목 재조정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공언에 그쳤다. 그사이 2022년 3월 어린이용 타이레놀(80㎎·160㎎) 생산이 중단돼 현재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은 11종으로 줄었다.
약사법 제44조의2는 복지부 장관이 안전상비약을 20개 이내 범위에서 지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다. 약사단체의 반대에 눈치를 보며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2017년 3월 복지부 안전상비약 지정심의위원회는 뒤늦게 첫 회의를 열었지만 약사계 인사가 자해 소동을 벌이며 결국 논의는 중단됐다.
지난해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복지부 담당자도 “필요성을 느낀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아직까지 안전상비약 지정심의위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명절마다 국민 불편이 반복되는데도 ‘사회적 합의’ 뒤에 숨는 것은 업무 태만이다. 심야 약국과 편의점을 찾아 전전하다가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을 더 이상 뒷짐 지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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