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위도 매각되는데 중기 홈쇼핑 또 만드는 정부

“데이터홈쇼핑 1위 업체(SK스토아)도 매각하는데 정부가 새 채널을 또 만든다니….”

최근 데이터홈쇼핑(T커머스)업계 관계자에게 들은 푸념이다. 이재명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중소기업 전용 T커머스 채널 신설에 속도가 붙자 홈쇼핑업계에선 과당 경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홈쇼핑 채널 17개 가운데 데이터홈쇼핑 채널만 10개에 달해서다.

중기 전용 T커머스 채널은 업계에선 ‘해묵은 논란’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신설 방안을 추진했다가 작년 말 계엄 사태가 터지며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올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최근 공영 홈쇼핑은 T커머스 채널 설립을 위해 100억원가량의 자사주 발행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중소 상공인의 판로를 넓히려면 전용 판매 채널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T커머스 업체가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중소기업 제품 의무 편성 비중이 70%에 달한다. TV홈쇼핑 채널인 홈앤쇼핑과 공영 홈쇼핑은 아예 중소기업 제품만으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T커머스 업체들은 채널 신설이 과당 경쟁과 매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홈쇼핑 산업은 이미 침체에 빠졌다. T커머스 5개 업체(SK스토아 KT알파쇼핑 신세계라이브쇼핑 W쇼핑 티알엔)의 작년 매출은 1조2142억원으로 2년 전인 2022년과 비교해 1.6% 줄었다. TV홈쇼핑 7개 업체 매출도 작년 기준 5조5724억원으로 2년 전보다 5.1% 감소했다.

TV 시청 인구도 줄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TV 이용 비율은 69.1%에 그쳤다. 해당 조사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70% 선이 무너졌다.

SK텔레콤이 T커머스 1위 사업자인 SK스토아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홈쇼핑이 더 이상 성장 산업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최근 거론되는 SK스토아 매각가는 1000억~2000억원이다. 작년 SK스토아의 연 매출(3023억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마지막 홈쇼핑 매각 사례인 2006년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매각 당시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당시엔 롯데쇼핑과 태광산업이 인수 경쟁을 벌였고, 롯데쇼핑이 사들인 지분 53%의 가치만 4667억원에 달했다. 당시 우리홈쇼핑 연 매출은 2463억원이었다.

영세한 중소기업을 위한 판로 확대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기 제품 의무 편성, T커머스에만 적용하는 화면 크기 제한 등 규제는 그대로 둔 채 신생 채널을 늘리면 업황 침체만 가속화할 뿐이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홈쇼핑업계의 활성화 방안이 선행되지 않으면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업계 전체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