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기 굴소스’는 1880년대 중국 광둥성 주하이시의 한 어촌 마을 요리사 이금상이 굴 요리 중 실수로 냄비를 불에 너무 오래 올려놔 졸은 데서 소스 활용을 착안한 것이 유래다. 자신의 이름 중 이금(李錦)을 따고 상표를 뜻하는 광둥어 접미사 기(記)를 붙여 세계적 브랜드가 됐다. 쫄면은 1970년대 인천의 한 제면소에서 냉면을 뽑다가 면이 나오는 구멍인 분창을 잘못 써서 두껍고 탱탱한 면이 나온 게 시초라고 한다.
시리얼의 탄생도 우연한 발견을 뜻하는 세렌디피티 현상의 하나다. 1894년 제칠일안식교 교도인 존 하비 켈로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환자식 개발 중 통밀가루 반죽을 그냥 두고 갔다. 바짝 굳은 반죽을 오트밀 롤러로 눌러봤더니 조각조각 납작하게 눌려 나온 게 플레이크의 효시다. 우유와 함께 환자들에게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상용화한 사람은 따로 있다. 전 재산을 날리고 요양원에 들어와 심신 치료를 받던 환자였다. 그의 이름이 추후 켈로그의 앙숙이 된 포스트다. 식비를 벌기 위해 조리실에서 일하다 켈로그 시리얼 레시피를 알게 됐고 이를 제품화해 큰돈을 벌었다. 존 하비 켈로그의 동생 윌 키스(WK) 켈로그가 형에게서 레시피 권리를 사서 회사를 차려 켈로그 시리얼 제품을 내놓으면서 켈로그와 포스트가 양분하는 시리얼 시대가 열렸다.
시리얼은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책임진 것은 물론 세계로 뻗어 갔다. 한국에서도 농심과 동서식품 두 대형 식품회사가 각각 켈로그와 포스트의 판매를 맡아 시장을 키웠다. 윌 키스 켈로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했는데, 이 학교가 필립 코틀러 교수 등을 보유한 세계적 MBA 켈로그비즈니스스쿨이다.
시리얼도 이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켈로그 모기업인 WK켈로그가 초콜릿 페레로로쉐와 ‘악마의 잼’ 누텔라 등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 페레로사에 팔렸다. 주 소비층인 학생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체 먹거리는 지속해서 늘어났다. 샐러드, 그릭요거트, 에너지바, 단백질 음료 등 다른 먹거리가 너무 많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이 하나만은 영원한 진리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