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 김영삼 정부의 실세 중 한 사람인 서석재 총무처 장관은 기자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김 대통령의 청렴성을 강조하다가 “시중에 4000억원을 가·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실명 전환하려 한다”는 내용을 비보도 조건으로 말했다. 이틀 뒤 유일하게 한 신문에 보도된 이 발언은 그해 10월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으로 단군 이래 최대 스캔들로 비화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다.
당사자 노 전 대통령은 보도 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나도 못 참겠다”며 펄쩍 뛰었다가, 박 전 의원 폭로 며칠 뒤 ‘못난 노태우’로 시작하는 대국민 사과문에서 재임 중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5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시인했다. 노태우 비자금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표에게도 20억원이 흘러 들어갔다. 박지원 대변인은 곤혹스러운 나머지 “전국적으로 전기가 나가 TV도 꺼지고 신문 윤전기도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회고록에서 “김영삼에게 (1992년 대선 자금으로) 3000억원을 줬다”고 했다.
그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30년쯤 지나 다시 회자한 게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을 통해서다. 지난해 5월 2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1999년 쓴 ‘선경 300억원’ 메모지 등을 증거로 채택해 노태우 비자금이 SK 성장에 기여했다며 최 회장의 재산 중 35%를 노 회장 몫으로 인정하는 재산분할 판결을 했다. 그 돈이 1조3808억원이다. 1심(665억원)의 20배가 넘는 액수다.
대법원이 어제 이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며 고법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SK 측에 유입됐다고 하더라도, 이 돈은 뇌물이기 때문에 법적 보호 가치가 없고, 노 관장의 기여로도 참작할 수 없다는 요지다.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 등을 줬을 때는 이익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명쾌함과는 별도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흑역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얼룩져 남아 있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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