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vs 5500억달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요구한 투자금액이다. 이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을까를 따져봤다. 여러 가지 계산을 해본 결과 양국이 지난 5년간 미국을 상대로 거둬들인 경상수지 흑자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는 3520억달러, 같은 기준 일본의 흑자는 81.3조엔(약 5400억달러)에 달했다. 공교로운 우연일 수도 있지만, 미국이 지난 4월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율을 책정한 단순 공식을 떠올려보면 이런 심증을 거두기도 어렵다. 당시 미국은 자국의 상품수지 적자를 상대국에서 수입한 총금액으로 나눠 숫자를 뽑아낸 뒤 이 비율을 절반으로 잘라 관세율을 책정했다. 대(對)한국 관세율 25%는 그렇게 매겨졌다. 왜 이런 기준을 사용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없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조차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만약 3500억달러를 책정할 때 5년 치 경상수지를 대입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대단히 부당한 것이다. 한국의 대미흑자 3500억달러는 상호 이익에 따른 거래의 결과다. 미국 정부의 지원이나 소비자들의 시혜로 얻은 것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에서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며 얻어낸 과실이다. 더욱이 대미 수출로 번 돈을 모조리 한국으로 들여온 것도 아니다. 번 돈의 상당 부분을 현지에 재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기업들의 대미 직접투자 잔액은 2400억달러에 육박한다. 여기에 이번 관세 협상 전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이 개별적으로 약속한 미래 투자액만 1500억달러다. 또 하나 짚어봐야 할 대목은 1조달러에 이르는 금융투자다. 이 가운데 70% 가까이가 증권투자다. 여기서 발생한 주식 배당금과 채권 이자가 모두 우리 경상수지의 본원소득수지에 반영된다. 트럼프 측 논리대로 한다면 서학개미들의 투자 배당금은 미국 상장사들의 이익을 갈취한 것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자와 배당 수입은 미국 자본시장과 기업들이 자본 유입으로 얻은 이득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과 투자는 상호 호혜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만이 양국 간 거래의 유일한 진실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처음부터 3500억달러라는 수치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 정부 측 희망대로 대출과 보증을 섞는다고 하더라도 투자 위험의 크기 자체는 작아지지 않는다. 사업이 망하면 우리가 모두 손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로 보완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해 스와프를 해야 하는 순간 자체가 우리 기업과 산업에는 대재앙이다. 굳이 미국이 최근 5년간 실적을 기준으로 삼겠다면 경상수지가 아니라 무역수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금융투자는 관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양국 간 서비스 수지는 오히려 미국이 흑자국이다. 5년간 무역흑자 규모는 1670억달러. 5년에 나눠 현금으로 집행한다면 연간 330억달러 정도이므로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외환보유액에서 동원 가능한 최대치로 제시한 연간 200억달러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18세기 <국부론>의 저자이자 근대 중상주의의 국가적 과오를 질타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운반하고 교환한다”고 규정했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영장류도 먼 거리를 오가며 물자를 교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의 약탈적 독점력이 기업의 자유로운 혁신과 경쟁을 가로막고 인도를 끊임없이 착취하는 구조로 몰아간다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지금의 미국은 과거 동인도회사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국은 야만적 아편전쟁으로 중국 국권을 침탈했지만 미국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항변할 것인가.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리프 아기옹 교수의 평가도 스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보호주의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성장과 혁신에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 측의 답답한 대응 능력과 돌파력 부족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미국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한국은 일본처럼 큰 부자도 아니고 미국 이익을 강탈하지도 않았다.

3 weeks ago
10
![[사설] 檢 항소 포기, 대장동 일당과 李 대통령에 노골적 사법 특혜 아닌가](https://www.chosun.com/resizer/v2/MVRDCYLFGU2DOYLCGEZTCZRXME.jpg?auth=e7208408e32f3c86fca96d1cc26ab946aa0573ff3afc88149eaf47be452d2014&smart=true&width=4501&height=3001)
![[팔면봉] 검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여권 인사도 놀란 듯.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권력 앞에 검찰권 포기, 용기 있는 검사 단 한 명 없었다](https://www.chosun.com/resizer/v2/GRSDOM3GGRTDMMZVMIZWEMRSGI.jpg?auth=3660099caccde3b5cc42f8a35fb1d3d3ed7245720ce0ddba78c999c2772ee0ad&smart=true&width=399&height=255)
![[사설] 국힘 대표 부인이 김건희에게 가방 선물, 민망하다](https://www.chosun.com/resizer/v2/MVQTQNLDMJSDONRTMVQWINDBG4.jpg?auth=8141846de3d24a96723f9b1cff26e76f746dd63a88bb3beb44b86fbf01793855&smart=true&width=6673&height=4246)
![[朝鮮칼럼] ‘진보 정권의 아이러니’ 재현하지 않으려면](https://www.chosun.com/resizer/v2/VXXDKUIJUJCOLIT4M4DA47BFKY.png?auth=47d5c0a683690e4639b91281f2cab5fd3b413998a70d2183f12a92e1f1b8119d&smart=true&width=500&height=500)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87] K팝, 그래미상 ‘빅4′ 고지 오를까](https://www.chosun.com/resizer/v2/5XHK7PZ56NHTTKH7COJFQ4M54Q.png?auth=664876bab5cee8d9c73896a7d01b64f27386130e62bef9ae4289fdb3837c803b&smart=true&width=500&height=500)
![[동서남북] 원산·갈마 리조트에서 이산가족 상봉을](https://www.chosun.com/resizer/v2/273GIBFF3NCHBC5LVGUUIDK3GM.png?auth=2dc473a67ab5cc661f563ad05832554564124579b2d90352af8c3782f593b38f&smart=true&width=500&height=500)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95] 밥그릇 심장](https://www.chosun.com/resizer/v2/JZ2DPK7OZBANLBLB5SS5OH3S6I.png?auth=9fb621a8d43376974dd4c21736aba72e87fd3876911d9303e1df9f5adebb9cb7&smart=true&width=500&height=500)







![닷컴 버블의 교훈[김학균의 투자레슨]](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