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이태원 참사·김민기 별세…위로의 곡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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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9집 '소풍'으로 떠난 이들 추모…"힘들어도 인생은 극복의 연속"

"새벽 4시까지 케이콘 뒤풀이 남던 퀸시 존스…음악 영웅들이 떠났다"

호원대 정년 퇴임, 후학 양성은 계속…"일을 그만둘 순 있지만 음악 중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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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정원영

[정원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힘들겠지만, 그래도 인생은 극복의 연속입니다. 세상은 어렵고 죽음이 있기에 추모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왔다 간 것이 소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션 정원영(65)에게 최근 몇 년은 커다란 상실 혹은 이별의 연속이었다. 각별하게 지냈던 대중음악과 공연계의 '거목' 김민기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2023년에는 존경하던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칼라 블레이와 색소폰 연주자 웨인 쇼터가, 지난해에는 정원영에게 음악적 영감을 줬던 팝 음악계의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각각 삶을 마쳤다.

3년 전인 2022년 10월에는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150명이 넘는 꽃다운 청춘이 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헤어짐의 반복이 창작의 계기가 됐다.

'곡을 써야겠다. 민기 형에 대한 곡을 써야겠다. 그리고 떠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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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민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25일 발매된 정원영의 정규 9집 '소풍'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김민기를 비롯한 '음악 영웅'들과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성격의 작품이다.

정원영은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이뤄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일을 겪었는데, 존경하는 민기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앨범에는 정원영이 유일하게 노래한 타이틀곡 '먼북소리'를 비롯해 김광진이 부른 따뜻한 분위기의 '순대국',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이 가창에 참여한 '사랑노래' 등 10곡이 담겼다.

타이틀곡 '먼북소리'는 그와 각별한 관계였던 김민기의 명곡들에서 조각조각 영감을 받아 정성스레 엮어 만든 노래다. '피가 맺힌 손가락을 한참을 바라본다'는 가사는 수준급 기타 연주자이기도 했던 김민기를 묘사한 것이다.

정원영은 "김민기는 너무나 진보적이던 분이었다"며 "그가 관여했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원래 출전자가 홀로 작곡과 노래를 다 해냈어야 했는데 어느 날 '시대가 변했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겠느냐, 더 자유를 줘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후 밴드 출연자도 나올 수 있게 됐고 스윗소로우도 팀으로 나와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너무나 훌륭한 분이었기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민기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하며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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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정원영

[연합뉴스 자료 사진]

노래 가사에서 '사는 게 살아내는 게'라는 대목은 퀸시 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지난 2011년 첫 내한 당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랑도 중요했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슬럼가에서 지냈기에 살아내는 게 중요했다'는 답이 인상 깊게 남았다.

그는 "저는 정재일과 함께 초대받아서 존스와도 자주 만났다"며 "존스는 K팝 글로벌 콘서트인 '케이콘'에 VIP로 참석했는데, 뒤풀이 자리를 새벽 4시까지 지키곤 했다. 제가 피곤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런 '음악 영웅'들이 최근 너무 많이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곡명이 그냥 북소리도 아닌 '먼'북소리인 점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북소리는 원래 멀리서 '둥둥' 울려서 사람을 부르는 듯한 게 특징"이라며 "노래 초반에는 '꽃잎들 떨어지고'라고 노래했지만, 후반에는 '웃어주던 구름'도 등장한다. 민기 형님이 떠난 것은 슬프지만 어떻게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SHE), '히'(HE), '로스트'(LOST) 등은 이처럼 떠나간 이들을 향한 묵묵한 추모이자 위로를 담고 있는 연주곡이다.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가 '로스트'와 '사랑노래'에 참여해 웅장한 사운드를 빚어냈고, 절친한 후배 뮤지션 정재일이 편곡했다.

정원영은 '로스트'에 대해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만든 곡으로, 오케스트라가 슬픈 멜로디를 반복해서 연주하되 정재일이 점점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편곡했다"며 "'로스트'라는 제목에 맞게 상실을 묘사했지만, 레퀴엠(진혼곡)처럼 너무 무거운 분위기는 내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떠난 이들'에 대한 상실감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10곡 꽉 찬 정규 앨범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작은 거인' 김수철은 녹음실 소화전 뒤에 앨범 제작에 쓰라며 '금일봉'을 두고 갔고, 그를 비롯해 정재일·장기하·이적·김광진 등 선·후배 뮤지션들이 금전적 혹은 음악적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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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9집 '소풍' 재킷 이미지

[정원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원영은 "살면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음악으로 덜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며 "그래서 음악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만들며 치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호원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올해 정년 퇴임했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해오던 CJ문화재단의 음악 인재 양성 사업 '튠업'과 연세대 강의 등으로 후학 양성은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우리 민족은 예술적으로 흥이 굉장하다. 경연과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좋은 친구들이 나온다"며 "저는 예술적 자질을 갖춘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잘하기에 음악 교육 쪽에는 계속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을 그만둘 수는 있어도 음악을 그만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는 음악 밖에 해 본 게 없다"며 "살면서 단 한 번도 음악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 벌써 다음 앨범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일평생 뮤지션으로 살아왔지만, 그는 의외로 미디는 다룰 줄 몰라 근래에야 약 한 달간 배웠다고 했다. 기계에 익숙지 않아서란다. 다음 앨범은 미디를 사용한 음악을 내는 것이 목표다.

"매일 아침 기도를 합니다. 제 음악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닿기를요. 누군가에게는 이 음악이 쓱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ts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30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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