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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관객 1천690만 명을 넘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마지막 시간'을 그렸다. 적장자(嫡長子)인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세조는 성리학 국가인 조선에서 적장자 세습의 원칙을 정면으로 뒤흔든 인물이다. 세종에서 문종,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지던 적통 승계는 계유정난으로 끊어졌다. 세조는 정적을 제거하고, 실권을 빼앗고, 양위를 강요하고, 끝내 왕위를 차지했다. 세조 역시 세종의 아들이기에 왕통은 이어졌지만, 적통은 무너졌다.
적통은 적장자를 중심으로 가문의 계승을 뜻하는 용어다. 현대 정치에선 정당의 이념, 전임 지도자들의 정치적 유산을 충실히 잇는 세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적통은 정통성과는 구분해야 한다. 적통이 계보를 중시하는 개념이라면, 정통성은 지지층 내부의 동의를 통해 확보되는 자격이다. 적통 개념은 정치적 해석에 가깝다. 핵심 지지세력이 공유하는 계보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통성은 그 논리와 무관하게도 쌓아 올릴 수 있는 자격이다. 역사와 가치, 이념을 수호하고 계승하려는 뜻이라면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계보의 논리로 권력 획득을 정당화하려고 할 때다.
한국 정치는 유난스럽게 적통을 앞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보수 진영에선 이승만·박정희·김영삼의 유산을, 진보 진영에선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노선을 누가 계승하느냐를 놓고 다툰다. 대통령 경선이나 전당대회 등 정치적 분기점마다 '누가 적통인가'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진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적통을 자처한 인물들이 항상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 진보 진영에선 이인제의 대세론을 비주류 노무현이 극적으로 깨뜨렸다. 2007년 보수 진영에선 박근혜의 우세 전망을 이명박이 근소한 차로 뒤집었다. 어제의 비주류가 오늘의 주류가 된다. 오늘의 적통도 내일이면 도전받기 마련이다.
미국 사례도 비슷하다. 공화당에는 오랫동안 로널드 레이건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넘쳤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그 계보 밖에서 등장했다. 워싱턴 주류나 공화당 엘리트 그 누구도 트럼프를 적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원과 유권자는 달랐다. 결국 공화당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한다고 내세우는 정치인은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계보만으로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양당 모두 선택의 기준은 '족보'가 아니라 '경쟁력'이었다.
군주제에서 적통은 권력 승계의 원리로 작용했다. 현대 정당에서는 적통이라고 해서 지위까지 보장받지 못한다. 민주 국가의 정당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시대정신에 맞는 지도자를 선출하려고 한다. 정치적 계보는 하나의 명분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정통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정통성은 당원과 지지층, 나아가 유권자의 동의와 인정 속에서 확인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적통인가'가 아니라 '누가 지금 정통성을 갖고 있는가'이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7월02일 06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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