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는 물론 치매 등 난치성 질환까지 고치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 '비만약'이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혼 여성은 약을 투여한 뒤 결혼·동거율은 물론 취업률까지 높아졌다. 비만 문제가 해결되고 건강상태가 좋아지자 생활 모습까지 바뀌었다는 의미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레베카 다이아몬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이달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체중 감량을 위해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약물을 활용한 미혼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결혼하거나 동거할 확률이 18.3%포인트 높아졌다. 1년 6개월 넘게 시간이 지난 뒤엔 그 격차가 28.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비만약은 취업률에도 영향을 줬다. GLP-1을 투여하기 전 미취업 상태였던 여성의 취업률은 투여하지 않은 여성보다 13.2%포인트 높았다. 1년 6개월 후엔 취업률 격차가 26.9%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이번 연구는 미국 성인 1만5000여명이 참여하는 대표 인터넷 패널 데이터(UAS)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은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비만약 마운자로(미국명 젭바운드) 등 GLP-1 치료제를 쓴 여성과 이들 치료제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한 여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설계했다. 치료 전 체질량 지수, 건강상태, 소득, 고용상태, 배우자 유무, 삶의 질 등이 유사한 그룹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 정확도를 높였다.
이번 연구에서 이미 결혼했거나 동거인이 있는 여성은 GLP-1 투여 후 삶에 변화가 없었다. 취업 중인 여성도 상태 변화는 미미했다. 미혼이거나 미취업인 여성들에게 GLP-1이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미취업 상태였던 여성은 GLP-1 비만약 투여 1년 6개월이 지난 뒤 주당 근무 시간이 9.9시간 증가했다. 실업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GLP-1 투여 그룹의 실업률은 치료 후 8.2%포인트, 치료 1년 6개월이 지난 뒤 16.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가계 소득은 치료 후 7%, 1년 6개월 지난 뒤 10% 늘었다. 비만약 투여로 결혼에 성공해 배우자가 생긴 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취업 상태였던 여성은 GLP-1 투여 그룹에서 고용주가 바뀌는 비율이 줄었다. 직장에 따라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 다른 미국 사회 특성상 GLP-1 급여 보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직이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비만이 가져오는 불이익'이 면접이나 소개팅처럼 첫인상이 중요한 단계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서 스웨덴에서 이뤄진 고도비만 수술관련 연구에서도 수술 전 미혼이었던 비만 환자는 수술 후 결혼하거나 짝을 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연구에선 기혼이었던 사람은 수술 후 별거하거나 이혼할 확률도 함께 높아졌다. 고도비만 수술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다만 GLP-1 치료제를 활용한 이번 연구에선 여성 기혼자가 이혼할 확률은 높아지지 않았다. GLP-1 치료제 활용 연구대상자의 체질량 지수(BMI)가 35로, 고도비만 수술 연구 대상자의 BMI 42보다 낮은 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비만 정도가 심하지 않아 삶에 미치는 변화도 고도비만 수술보단 크지 않았다.
연구진은 "GLP-1 계열 의약품을 단순히 임상 데이터나 의료비 지출 문제로만 평가해선 안된다"며 "취업과 근로시간, 결혼 등 경제적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비만약은 건강 뿐 아니라 사회, 노동 시장 등에서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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