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면적은 경증, 삶은 중증… 건선환자의 현실

3 weeks ago 9

치료 환경과 인식 개선을 위해 건선 환우들이 모여 손을 잡은 모습. (사)한국건선협회 제공

치료 환경과 인식 개선을 위해 건선 환우들이 모여 손을 잡은 모습. (사)한국건선협회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건조한 날씨에 심해져 고통을 받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중증 피부질환이 있다. 건선이라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건선 환자 수는 2023년 기준 약 15만6000명. 이 중 중증 환자는 약 10% 내외로 추정된다.

건선은 모든 연령대에서 발병할 수 있고 20, 30대 젊은 환자 비중도 약 27%에 이른다. 피부에 붉은 반점과 두꺼운 각질이 발생해 질병 자체도 고통스럽다. 피부 감염병, 혹은 개인위생 문제가 원인이라는 편견으로 인한 환자들의 속앓이도 심하다.

건선은 피부에 ‘얼마나 넓게, 얼마나 두껍고 붉은 판(plaque)이 퍼져 있느냐’로 중증도를 평가한다. 임상 현장과 연구에서 가장 널리 쓰는 지표는 건선중증도평가지수(PASI)와 체표면적(BSA)이다. 통상 PASI 10 이상, BSA 10% 이상이면 ‘중증’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은 해외 신약 임상시험에 맞춰 표준화돼 있다. 그러나 건선 피부 면적이 크게 생기는 서양인에게 흔한 ‘대판상건선’과 달리 한국인에게는 건선 면적이 작게 생기는 ‘소판상건선’이 많다. 이런 기준은 한국 환자가 체감하는 고통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온전히 담기 어렵다.

문제는 이 간극이 치료 접근성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신약(생물학적제제, 소분자제제) 등장으로 중증 판상건선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치료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건선 피부의 면적이 작다는 이유로 ‘경증’에 머무르는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치료 문턱이 높다. 삶의 질이 중증환자만큼 나빠졌는데 면적이 작아 경증으로 취급받는다는 이야기다.

두피, 얼굴 헤어라인, 손발과 손발톱, 성기 등 면적이 작은 ‘특수 부위’는 건선 치료의 대표적 사각지대다. 전체 면적으로는 중증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기능 손상이나 심리적 위축이 심각한 경우가 많다. 이 중 두피 건선 환자는 비듬·각질 탓에 자기관리가 부족하다는 편견에 시달리거나 인사 평가 불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헤어라인을 넘어 안면으로 내려오면 외모 스트레스로 대인관계 회피가 늘거나, 특히 화장으로 가리기 어려운 남성 환자들이 더 고통받는다. 손, 발바닥 병변 환자들은 통증으로 고통받는 데다, 악수 등 일상 접촉 자체에 부담을 느낀다. 성기 병변은 성생활을 회피하게 하고 부부 갈등과 오해로 번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건선학회는 중증 판상건선 치료 시 국내 형편에 맞게 환자 중심의 관점을 더 반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학회는 2024년 10월 세계건선의 날을 맞아 국내 환자들의 상황을 반영해 국내 중증 판상건선 기준을 △PASI 10점 이상이거나 △PASI 5점 이상 10점 이하이면서, 특수 부위에 건선이 있는 경우로 새로운 전문가 합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들은 환자의 목소리를 근거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특수 부위 건선의 환자 수, 피부 면적에 대한 침범의 기준 설정과 환자의 주관적 고통, 기능장애,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정교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물론 서양 기준의 중증 판상건선 환자는 2017년부터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치료비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는 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일반 환자의 10% 수준으로 낮추는 일종의 건강보험 혜택이다. 당시 정부와 학회는 중증 건선 환자 규모와 예산을 미리 추정해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행 이후 약 10년에 가까워지는 지금, 당시 정부가 예상했던 환자 규모에 비해 실제 혜택을 보는 환자 수는 적다 . 다시 말해 정부가 책정한 예산보다 실제로 이 제도를 이용하는 환자가 적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치료가 꼭 필요하지만 ‘면적이 작다’는 이유로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된 특수 부위 건선 환자에게 문을 조금 더 열 여지가 있다. 두피·손발·얼굴 등 부위에 건선이 생겨 일상에 큰 불편을 겪는 환자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확장할 여지가 있다. 이제는 단순히 PASI, BSA 등 수치로만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 ‘삶이 중증인 건선 환자’의 실제 불편과 고통을 10년 전 산정특례 예산에 반영할 때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