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히딩크의 ‘스리백’과 홍명보의 ‘스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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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엄지성이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의 친선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축구대표팀 엄지성이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의 친선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축구공은 둥글다.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다. 이 공은 구르고 굴러 한국 축구계에서 묘한 인연과 반복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E조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네널란드에 0-5로 대패했고, 한국축구의 전설이었던 차 감독은 대회 도중 경질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때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공교롭게도 차기 월드컵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01년 프랑스와 체코에 0-5의 대패를 당했다. 한국팀을 5-0으로 참패시켰다가 다시 한국팀을 이끌고 잇달아 0-5 패배를 당했던 히딩크 감독은 그래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2025년 10월.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홍명보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 되어 브라질(10일), 파라과이(14일)와 평가전을 치렀다. 홍 감독은 파라과이에는 2-0으로 이겼지만 브라질에는 0-5로 대패했다. 점수 차가 컸기에 비판도 거셌다. 홍 감독은 이에 대해 새로운 포메이션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단점이 드러난 것이며 앞으로 보완해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히딩크 감독은 잇달아 0-5로 패하는 과정에서도 한국팀을 강하게 조련시켰고 결국 한국을 2002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다. 그의 대패는 더 나은 결실을 향한 실험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현상이었고 이후 팀은 급속도로 개선됐다. 홍 감독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홍 감독이 이번에 실험한 것은 수비수 3명을 배치하는 ‘스리(3)백’ 포메이션(3-4-3)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이끌 때 쓴 주력 포메이션이 ‘3백’이었다. 3백은 3명의 수비수 중에서도 가운데 및 최후방에 서는 ‘스위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수비 및 반격의 빌드업을 조율한다. 1998, 2002 월드컵 당시 홍 감독이 바로 이 스위퍼였다. 최근 브라질전에서는 김민재가 그 역할을 했다.

3백에서는 수비수 3명 외에 양 측면을 담당하는 윙백들의 역할이 크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이영표, 송종국이 좌우 윙백이었다. 방어 때는 순간적으로 수비에 합류하여 ‘5백’을 형성해 수비를 보강하고 공격 때는 측면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 공격의 활로를 찾는다. 그 대신 공수에 걸쳐 끊임없이 뛰어야 하기에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고 빠르게 상대팀에 침투해야 하기에 스피드 또한 갖추어야 한다. 공수에 걸쳐 수비진 및 공격진과 정밀한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에 세밀한 부분 전술 및 협력 플레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래 손발을 맞춰 보아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에 부임해 1년여간 한국 축구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금은 불가능한 장기 합숙훈련을 실시하고 지옥훈련에 가까운 체력 훈련과 전술 훈련으로 시스템을 갈고닦았다. 그러나 3백은 윙백들이 공격에 나설 당시 그들의 후방 수비가 비는 단점이 있었고 점차 안정적인 측면 수비를 펼치는 ‘포(4)백’(4-4-2)에 밀려 한동안 사라져 갔다.

홍 감독의 3백은 브라질전에서 단점을 드러냈다. 경기 중 5백으로 변형하면서 수비수들을 늘렸지만 협력 플레이가 정교하지 못했다. 윙백들이 수비에 가담할 때 상대적으로 중원에서의 선수 수가 부족해지고 약세를 초래했지만 이를 커버하지 못했다. 중원에서부터 개인기 좋은 브라질 선수들이 마음껏 활개를 쳤고 그 돌파를 견디지 못했다. 또 빠른 윙백 및 윙포워드의 부재로 측면 공격이 무뎠다. 홍 감독은 파라과이전에서 김민재를 스리백 중앙이 아닌 왼쪽에 기용하며 수비조직에 변화를 주고 측면 공격에서 발 빠른 엄지성을 활용했다. 대표팀의 모습은 다소 나아졌다. 그러나 두 경기 모두에서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건 바로 한국 공격의 핵심인 손흥민 활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익숙한 측면 공격이 아닌 ‘원 톱’으로 나선 손흥민은 2경기 내내 철저히 고립됐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8개월 정도 남았다. 과거 히딩크 감독처럼 장기 합숙훈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 감독이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은 그의 구상에 맞는 선수 발굴과 협력적 부분 전술 적용이다. 그의 3백 실험이 선수로서 그에게 익숙했던 과거로의 단순회귀가 아니라 창조적 변형이 되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전술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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