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의 하늘속談]엔진 찌그러진 이 비행기, 사고 난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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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37-400 기종의 엔진(왼쪽 사진)과 에어버스 320 기종의 엔진. 737의 엔진이 위아래로 납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에어버스

보잉 737-400 기종의 엔진(왼쪽 사진)과 에어버스 320 기종의 엔진. 737의 엔진이 위아래로 납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에어버스

이원주 산업1부 기자

이원주 산업1부 기자
저비용항공사 등에서 자주 쓰는 보잉 737 기종을 자세히 보면 엔진이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아래로 꾹 누른 찹쌀떡 모양처럼 아랫부분이 평평하다. 서양에서는 햄스터가 입안 가득 먹이를 물고 있는 모양과 닮았다며 ‘햄스터 볼 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엔진이 찌그러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딘가에 부딪혀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땅에 긁히지 않도록 일부러 이렇게 디자인했다. 이유는 보잉 737의 랜딩기어(바퀴) 길이가 짧아 항공기 전체 높이가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737-800 기종의 경우 바닥에서 항공기 바닥까지의 높이가 성인 키보다 낮은 1.45m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경쟁 기종인 에어버스 A320의 높이는 약 2m다.

737의 높이가 이렇게 낮았던 이유는 이 비행기의 ‘출신’ 때문이다. 보잉은 이 비행기를 처음 만들 때 단거리를 오가는 ‘지역항공기(Regional Jet)’ 용도로 개발했다. 적은 인원을 태우고 소규모 지방 공항을 잇는 기종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첫 기종인 737-100은 좌석 수 110명에 최대 비행거리 2850km 정도로 제작됐다. 미국의 경우 뉴욕에서 미국 중부까지, 한국 인천공항을 기준으로 볼 경우 베트남 하노이까지도 못 가는 거리다.

소형 공항 취항을 목적으로 만들다 보니 이 비행기는 공항 상황이 열악해도 충분히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 높이를 최대한 낮춰 다른 장비 없이도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탑승교나 계단이 없더라도 기체에 내장된 계단을 꺼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옵션도 별도로 만들어 원하는 항공사에 장착해 납품했다.

이후 항공사들에서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더 멀리까지 날 수 있는 737 기종을 요구하면서 보잉은 동체와 엔진 크기를 계속해서 키우는 식으로 항공기를 개선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엔진이 땅에 닿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737-100에 장착된 엔진은 지름이 1.25m에 불과해서 지면에서 50cm 정도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737-800에 달린 엔진은 지름이 1.55m까지 커지면서 착륙할 때 비행기가 조금만 좌우로 기울어도 엔진 하단이 긁힐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엔진 아랫부분을 일부러 찌그러뜨리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원래는 엔진 아래쪽에 장착되어 있던 배관과 전자장비들을 모두 엔진 양옆으로 옮겨 욱여넣었다. 엔진 양쪽이 볼록해지다 보니 평평한 아래쪽도 눈에 띄게 부각된 것이다.

엔진 외에도 보잉 기술자들이 고민한 부분이 한 군데 더 있다. ‘바퀴 덮개’다. 통상 항공기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뒤 바퀴를 동체 안으로 접어 넣고, 이 공간을 덮개로 덮어버린다. 그러지 않으면 공기 저항이 커져 효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낮은 기체 높이 때문에 737 기종은 이 바퀴 덮개를 만들 공간도 모자랐다. 결국 보잉 기술자들은 바퀴를 접어 넣는 공간을 최대한 좁게 만들고, 비행 중 바퀴가 외부에 노출되는 쪽에 평평한 휠을 장착해 덮개가 없더라도 공기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래서 떠오른 737 항공기를 바로 아래에서 보면 바퀴가 외부에 노출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원주 산업1부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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