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작년엔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슨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공저한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더니, 올해는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어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상금 지분의 절반을 가져갔다. 모두 유명한 석학이지만, 순수 경제학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작년과 올해 노벨위원회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첫째,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 둘째,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제도와 문화라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 공동 수상자 6명이 역사 분석과 수리 모형을 통해 발견한 일관된 연구 결과다.
모키어 교수의 대표 저서는 1990년 출간한 <부의 지렛대>와 2016년 쓴 <성장의 문화>다. 그는 일련의 저서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와 계몽주의를 거쳐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역사를 추적했다. 특히 일찌감치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기술 혁신을 이룬 중국이 아니라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화한 이유를 제도와 문화, 축적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나라 초기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진 ‘해금령’이다. 해양무역 등 바다로 나아가는 모든 활동을 금지한 이 정책으로 이전까지 유럽을 크게 앞섰던 중국의 해양 기술은 수백년 동안 정체된다. 변화를 두려워한 황제들이 창조적 파괴를 막은 셈이다. 중국은 또 실용적 도구(예컨대 나침반)를 발명하는 데에는 능했지만 이를 과학적 발견(자기장의 존재)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모키어 교수는 이를 중국의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제도와 문화 탓으로 돌린다. 반면 정치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다원주의가 꽃을 피웠다. 지식인들은 국경을 넘어 활발히 교류했고, 기술 발명과 과학적 발견이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여기에 특허 등 혁신에 대한 보상체계를 구축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꽃을 피웠다.
올해 공동 수상자인 필리프 아기옹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2022년 출간한 <창조적 파괴의 힘>에서 1820년 전까지 0.05%에 불과하던 세계 경제 성장률이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은 혁신의 축적 때문이며, 그 배경엔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한 유럽의 제도와 문화가 있었다고 설파했다. 로빈슨과 애쓰모글루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북한 같은 가난한 국가의 지도자가 포용적 제도 대신 착취적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노벨위원회가 2년에 걸쳐 사실상 같은 주제를 연구한 학자들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지금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대변혁기여서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동시에 미·중 패권전쟁으로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먼지가 걷힌 후 최종 승자를 가늠하기 위한 관전 포인트로 ‘창조적 파괴’라는 프리즘을 제시한 셈이다.
수상자들은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제도와 문화를 갖춘 모범 사례로 한국을 꼽는다. 하지만 한국에 해금령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혁신을 거부하는 기득권의 반발, 이들의 지대 추구를 막지 못하는 정치 포퓰리즘, 과학도 진영 논리에 오염시키는 정치 양극화 등이다. “경제 성장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창조적 파괴의 메커니즘을 지켜내지 못하면 다시 정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존 해슬러 경제학상 선정위원장의 발언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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