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딥 리스닝: 쇼팽 콩쿠르’ 무대에 다녀왔다. 말 그대로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된 주요 피아노곡을 집중해서 깊게 듣는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막을 올린 본선 일정에 발맞춰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1960년 우승자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부터 2015년 챔피언 조성진의 연주까지 ‘쇼팽 올림픽’을 수놓은 순간들을 복기하듯 감상할 수 있었다.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의 한 고층 건물, 창밖으로 롯데타워가 신기루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서자, 장대비 같은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에선 이웃집 생각에 볼륨을 낮추기 일쑤여서 원 없이 볼륨을 높인 이런 곳에 가면 아드레날린 수치가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걸 느낀다. 벽에 붙여 놓은 콩쿠르 소개글도 탄탄했다. “바르샤바 음악원의 신동이었던 쇼팽은 생전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슈만과 리스트, 들라크루아와 조르주 상드 같은 명사들로부터 깊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1849년,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섬세한 영혼이 떠났다’는 말로 추모되었다. (중략) 1927년 새로운 시대의 쇼팽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탄생한 쇼팽 콩쿠르는 첫해에 단 26명의 참가자로 치러졌지만 5년 뒤 열린 두 번째 대회에서는 200명 이상이 참가하며 혼돈의 시대에 쇼팽의 음악을 다시 피어나게 했다.”
장소를 세 차례 옮겨 가며 총 8곡을 감상했다. 24세에 우승을 한 순간 이미 불멸의 이름이 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부터 1960년 이후 15년 만에 자국 폴란드에 다시 우승의 영광을 안겨 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콩쿠르 실황까지…. 전설의 순간들이 강력하고 매끈하게 재생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조성진의 2015년 콘서트 실황. 조성진의 얼굴도, 손가락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그 생생한 존재와 함께 있는 듯 벅찼다. 연주를 감상하는 동안,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현석 UNQP 대표의 존재도 불쑥불쑥 떠올랐다. 한쪽에서는 챗GPT로 모든 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바꿔놓지만, 또 한쪽에서는 소리에만 구멍처럼 빠져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그런 열심과 열중으로 펼쳐 보이는 기획이 귀하게 와닿았다. 이런 다양함이 사라지는 순간 음악도 연동해서 사라질 것 같다.‘소리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몇 주간 쇼팽의 여운 속에 살았다. 연주자들의 실황을 일일이 찾아보고, 무대공포증까지 있던 쇼팽의 생애도 틈틈이 들춰 보고 있다. 순간순간 덜 무료하고, 더 재미있다. 이 소소하고 동그란 작은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싶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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