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불똥이 주요 천연광물 확보를 둘러싼 전장으로 튀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확보하기 어려운 광물 원소를 뜻하는 '희토류' 제품 수출을 의도적으로 통제하자, 미국이 호주와 희토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자원 개발 동맹을 선언한 것이다.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핵심 광물 및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미-호주 프레임워크'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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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니즈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갖고 '핵심 광물 및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미-호주 프레임워크'에 공동 서명했다. 2025.10.20
희토류는 지구상에서 중국에 가장 많이 매장돼 있다. 개발과 상업화에도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채굴 생산량과 가공량에서 압도적 물량을 자랑하며 세계 정제 희토류 제품 시장을 90%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 사실상 독점 체제여서 공급망 주도권과 가격 결정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나라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희토류는 각종 첨단 제품 원료로 수요가 늘고 있어 세계 전체가 중국에 공급망을 의존하는 구조는 국가 안보상 매우 위험하다. 미국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희토류(REE: Rare Earth Elements)는 주기율표상 17개 화학 원소를 묶어 이르는 말이다. 원자번호 58번 란타넘(La)부터 71번 루테튬(Lu)까지)까지 란타넘족 15개 원소에 더해 21번 스칸듐(Sc)과 39번 이트륨(Y)이 포함된다. 이들을 굳이 합쳐 통칭하는 이유는 이들 원소의 전자 배치와 화학적 성질이 거의 같고 특정 광물 속에 함께 분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희토류는 명칭 때문에 '인지 오류'를 부른다. 희소 원소 또는 희귀한 광물이란 오해다. 사실 희토류 원소는 지구 지각에 비교적 흔하게 매장돼 있다. 다만 이들 원소를 함유한 광물에서 각 원소를 추출하기가 어렵고 정련 가공도 복잡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채굴 및 가공 과정에서 유독 물질과 환경 오염이 발생하는 것도 미국 같은 선진국들이 희토류 채굴, 가공, 관련 제품 생산을 꺼린 이유 중 하나다. 미국에도 충분히 자급할 만한 희토류 광물이 매장돼 있다. 다만 경제성과 환경 이슈 등으로 인해 중국에서 채굴하고 가공한 희토류 제품들을 수입해 써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은 이미 트럼프 정부 1기 때 미·중 충돌이 격화됐을 무렵부터 대비를 해왔다. 수십 년간 멈춰 세운 희토류 채굴 및 가공 산업을 부활하기로 하고 행정 절차에 들어간 바 있다. 가격 경쟁력이 중국 업체에 크게 밀릴 수밖에 없으니 업계에 정부 보조금을 주려는 준비도 병행해왔다. 쉽게 말해 중국과 관계가 좋을 땐 희토류를 수입해 쓰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했으나 안보 비상 상황이라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전략자산'을 확보해 더 큰 국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 간 이번 희토류 공동개발 합의도 오래전 준비해온 것이라고 한다. 협정 체결을 위한 구체적 실무 작업도 몇 달 전부터 진행돼 왔다는 후문이다. 매장량에서 호주는 세계 4위, 미국은 세계 7위이고 양국 모두 선진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이니 상당한 시너지가 예상된다. 여기에 일본과 영국도 가세해 협업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해 서방 자유주의 진영이 사실상 '희토류 동맹'을 결성하고 나선 셈이다. 미국은 향후 중국 견제를 위한 거점으로 삼고 공을 들이는, 희토류 매장량 세계 6위 베트남과도 희토류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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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희토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첨단 무기 등의 제조 공정에 없어선 안 될 핵심 자원이다. 그런데 중국의 생산 독점과 무기화는 이처럼 서방 자유 진영의 희토류 동맹이라는 반작용을 야기했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 속에 이제 광물자원을 두고도 세계 대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은 아예 대놓고 동맹국들을 상대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공동으로 맞서자고 요청한 상태다. 이미 진영 대결 양상이 된 만큼 우리나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을 최대화할 선택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는 원료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제조국이므로 지금 같은 상황에 취약하다. 이런 속성과 한계를 냉철히 자각해 비상시에도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 자원이 부족해지는 사태가 없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22일 11시3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