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서 수법은 바뀌었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젊은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십수 년 전 거마가 2025년 캄보디아로 옮겨졌고, 건강식품과 옥장판이 보이스피싱과 불법 도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라도 있었지만, 캄보디아 사태는 감금 피해자가 피싱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이기도 해 해석마저 복잡해졌다. 열심히 살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청년들은 인생 한 방을 노리며 범죄의 늪에 빠진다.
땀 흘리는 노력 비웃는 절망
캄보디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627달러, 주력 산업인 의류 신발 제조업 임금은 월 30만 원 남짓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한국의 1980년대 중반과 엇비슷하고,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상대적 국력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의 1970년대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곳에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간 청년들이 건강한 일자리를 기대했을 리 만무하다. 그 끝은 알려진 대로다.한국의 청년들은 왜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밑바닥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가 생겼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작년 5월 이후 17개월 연속 하락하며 45%대에 머물고 있다. 청년층 취업자는 올 8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22만 명 가까이 감소하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8월 이후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14개월째, 건설업은 16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인 청년 비중은 올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임시 일용직까지 포함하면 10명 중 4명 가까이가 불안정한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청년들이 첫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200만 원 안팎이 대다수이고 정규직 진입 장벽은 갈수록 높아진다. 사회에 진입해도 평생직장의 꿈은커녕 ‘단기직-이직-구직 포기’라는 굴레에 갇힌다. 2000년대 중후반 일본의 취업 빙하기 세대가 보여주듯, 한번 어긋난 출발은 중년이 돼도 회복되지 않는다.
속았다고 하지만, 캄보디아로 향한 청년 대부분은 잘못된 계산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을 준비할 수 있었고,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며 미래를 기약했어야 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일부 청년들이 범죄의 문을 두드렸다. 문제는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 겁이 나 잘못된 선택을 할 엄두를 못 내는 청년들이 땀 흘리는 노력을 어리석게 비웃는 절망에 좌절하고 있다는 점이다.구조 그대로면 제2의 캄보디아 생긴다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구조적 문제에서 나온 것이라면, 캄보디아 사태는 개인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번듯한 일자리를 꿈꾸기 어려운 변두리 계층 청년들이 인생을 걸고 마지막 한탕을 잡기 위해 범죄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저지르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의 대상 역시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서민들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캄보디아 사태는 국내에서도, 또 다른 국가에서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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