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이웃나라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조언

3 weeks ago 12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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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7번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언론은 ‘27 대 0’이라며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한국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기자는 두 차례 도쿄특파원 근무 중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 3명을 인터뷰했다. 매번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기초과학 지원은 국가의 의무”

처음 만난 수상자는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명예교수. 뉴트리노 천문학을 개척한 공로로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08년 1월 신년맞이 석학 인터뷰였다. 당시 81세였던 그는 초등학교 강연에 열심이었는데, ‘기초과학도 진지하게 하면 재미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만난 젊은 학자들이 무척 진지했다”며 양국 공동으로 세계 최대 과학연구소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 젊은이가 기초과학에 기여할 때가 왔는데, 일본과 한국 독자적으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론은 기초과학 지원은 국가 의무라는 것. “국가에 미래가 있으려면 국내총생산 몇 %는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도쿄대 법인화 이후 산학협력 중심이 되다 보니 기초과학 지원이 줄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듬해 2월에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산업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노벨상 시상식에 가기 위해 68세에 처음 여권을 만든 ‘토종’ 학자였다. 1973년 목욕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토대로 작성한 6쪽짜리 소립자 구조론 논문은 이후 물리학자 수백 명이 매달려 2001년 입증됐다.

그는 당시까지 일본에서 소립자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6명이나 나온 비결에 대해 “결국은 국력이고 사회 역량의 총합”이라고 했다. “과학이 융성하려면 사회가 안정되고 기초과학 지원이 있어야 한다. 기반이 마련되면 인재가 모이고 그중에 과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생긴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자리에 간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축적이 필요하고 인재가 모여야 한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 발표 다음 날 인터뷰를 청하는 e메일을 보냈는데, ‘학교로 오라’는 답장이 왔다. 약 2주 뒤 만난 그는, 단독 인터뷰는 스웨덴 방송사 한 곳과 동아일보만 응했다고 했다.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는데, 요지는 ‘양국 간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길게 보고 미래를 위해 서로 도우며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혼조 교수의 공적은 면역항암제를 만들어 암환자에게 희망을 준 것. 대학원생 연구에서 우연히 발견된 새로운 분자를 4년간 들여다보다가 이 분자가 면역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암 치료에 응용했다.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돌을 20년간 갈고닦았더니 다이아몬드가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돈 되느냐’만 따져서는 큰 성취 어려워

세 사람은 자신들 업적은 우연과 호기심, 꾸준함 덕이었다고 했다. 남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일에 정성을 쏟으며 한우물을 파는 뚝심이 있었다. 그 배경에 기초과학을 중시하고 지원한 국가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일본 과학계의 호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는 걱정도 공통됐다. 자유롭고 엉뚱한 상상력이 허용되는 풍토가 사라졌다는 것. 고시바 교수가 뉴트리노를 세계 최초로 관측한 때는 1987년, 마스카와 교수의 ‘유레카’는 1973년, 혼조 교수는 1992년의 발견이 계기였다. 연구 규모는 커지는데 국가는 실용화 여부만 따지며 일일이 보고를 요구한다. 이래서는 수십 년 뒤 노벨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간은 무상하다. 고시바 교수는 2020년, 마스카와 교수는 2021년 타계했다. “기초과학을 키우려면 농부가 씨를 뿌리듯 젊은 연구자들에게 돈을 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던 혼조 교수는 면역항암제 특허로 받은 로열티로 교토대에 젊은 연구자 지원 기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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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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