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현수]보유세 높은 美는 세금으로 집값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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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경제부장

김현수 경제부장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보유세 인상 논란이 거세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방향의 세제 개편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미국처럼 재산세를 (평균적으로) 1% 매긴다고 치면 (집값이) 50억 원이면 1년에 5000만 원씩 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는 보유세 인상이 구 부총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결정된 게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간 기재부가 보유세 카드에 상당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구 부총리의 발언은 한국 보유세가 미국보다 낮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0여 년간 일관성 없는 부동산 대책에 시달려온 국민들은 ‘보유세 1%’ 언급에 술렁이고 있다.

美 보유세 1위 뉴저지 부동산 골머리

그간 정책 실패에도 보유세 인상이 여전히 유효한 부동산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은 ‘똘똘한 한 채’ 문제를 해소할 매력적인 카드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다주택자나 ‘똘똘한’ 고가 주택 보유자가 매물을 내놓으면 공급이 늘고 가격이 안정된다는 논리다.

물론 실제 보유세가 부동산 가격 변동성 완화, 세대 간 주택 전이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증된 사례는 보기 힘들다. 보유세가 높은 미국만 봐도 그렇다.

미국 주택 보유세는 종합부동산세는 없고 지방세인 재산세가 전부다. 대체로 한국의 0.1∼0.4%보다 높다. 시·카운티별로 실효세율이 다른데, 뉴저지주가 평균 2.3%로 가장 높고 뉴욕은 1.26%, 캘리포니아도 0.7% 수준이다.

하지만 뉴욕, 캘리포니아, 뉴저지주는 ‘주거난(housing crisis)’으로 골머리를 앓는 대표 지역이다. 집값과 월세가 모두 치솟아 2030세대는 높은 주거비에 시달리고, 노숙인 증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커지고 있다. 일자리·학군·교통이 집중된 대도시일수록 수요가 몰리지만, 공급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높은 공사비, 까다로운 인허가, 단독주택 선호도 등이 공급 제한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에 따르면 미 보유세 1위 뉴저지주 주택가격지수는 최근 5년 동안 68% 급등했다. 같은 기간 캘리포니아주(44%)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앞에 보유세 효과는 미미한 셈이다.

부동산 세제 넘어 상속세 등 큰 그림 봐야

정책효과가 미미한 증세는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진다. 미국 보유세는 지역 학교와 편의시설 등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지역 세수 확충 명목이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집값이 급등해 지역 개선 효과보다 보유세 부담이 훨씬 커지자 곳곳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에 텍사스주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산세 감세 관련 주민 투표를 진행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1970년대에 보유세 상승에 분노한 주민들이 발의해 재산세율은 1%, 상승률은 2%로 제한하는 내용을 주 헌법에 담았다.

세목 하나만 떼어 비교하는 것도 위험하다. 한국은 보유세는 낮지만 거래세가 높다.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1인당 약 1399만 달러(약 201억 원)까지 연방상속세가 면제되지만, 한국은 서울 아파트 한 채로도 과세 대상이 된다. 집 한 채를 두고 보유세는 미국식으로, 증여 및 상속세는 한국식으로 내라고 하면 조세 저항은 불가피하다.

모든 방안을 강구해 주거 안정에 나서야 하는 것은 맞다. 누더기가 된 부동산 세제 전면 개편도 필요하다. 하지만 증세는 납세자가 효용을 체감하고 공감할 때에만 정당성을 얻는다. 특히 보유세가 특정 계층을 겨냥한 정치적·징벌적 세금이 된다면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제 개편은 큰 그림을 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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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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