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개막작도 AI…K-콘텐츠산업 새 국면 맞이하나 [무비인사이드]

7 hours ago 1

신규 AI 애니메이션 '캣비기' /사진=CJ ENM

신규 AI 애니메이션 '캣비기' /사진=CJ ENM

인공지능(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 콘텐츠 산업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구글은 영화 제작자를 위한 AI 기반 영상 생성 서비스 '플로우'를 출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 기술은 창작자가 상상하거나 구상한 장면을 실제 영상처럼 구현해주는 도구로, 영화 제작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영화제와 극장, 대형 제작사들까지 AI 기술을 창작 과정에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실험에 나서고 있다. 영상 콘텐츠 산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작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다. 지난 3일 개막한 제29회 BIFAN은 개막작으로 영화 '그를 찾아서'(감독 피오르트 비니에비츠)를 상영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작품은 독일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의 시나리오를 AI에 학습시켜 만들어진 영화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 AI 시대 예술의 윤리를 성찰하는 서사를 담았다. 단순한 기술 활용을 넘어 창작의 본질을 되묻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올해 BIFAN은 AI 기반 영화 총 11편을 공식 초청해 지난해보다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지난해 국내 영화제 중 처음으로 AI를 핵심 주제로 다룬 데 이어, 올해도 'AI 영화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강화했다. 'AI 국제 콘퍼런스'를 2년 연속 열고, AI 필름메이킹 교육 프로그램 '환상영화학교' 운영을 통해 5년간 AI 영상 창작자 1만 명 양성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극장가에서도 움직임이 포착됐다. CGV는 국내 멀티플렉스 최초로 'AI 영화 공모전'을 열고, 수상작과 본선 진출작 총 9편을 선정해 상영하는 'CGV AI 영화제'를 진행 중이다.

김재인 CGV 콘텐츠·마케팅 담당은 "이번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이 AI가 만든 콘텐츠를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창작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AI 영화에 대한 관객의 높은 관심을 확인한 만큼, 향후 더 신선한 콘텐츠 실험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피오트르 비니에비츠 감독의 '그를 찾아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피오트르 비니에비츠 감독의 '그를 찾아서'

◆ '기생충' 제작사도 AI 실험…숏폼부터 장편까지

콘텐츠 전문기업들은 AI 기술 도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도 빠르게 변화하는 제작 환경과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AI 기반 콘텐츠 제작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콘텐츠 실험은 숏폼, 장편 애니메이션, 글로벌 현지화 전략 등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바른손이앤에이는 생성형 AI 이미지와 모션을 바탕으로 한 숏폼 드라마 시리즈를 개발 중이다. 주인공 캐릭터를 AI로 생성하고, 현실 배우가 연기한 장면과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신선한 연출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부 배경과 장면 연출까지 AI를 활용해 기존 숏폼 콘텐츠에서는 보기 드문 몰입감 있는 비주얼을 구현하며, 2025년 내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프리 비주얼 단계부터 AI를 활용한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AI로 캐릭터 디자인과 세계관을 구축해 제작 효율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로, 전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비주얼을 구현해 2026년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한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AI 다국어 더빙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에 AI 기술을 적용해 더빙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콘텐츠의 배급 효율은 높이는 전략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공동제작 등 바른손이앤에이가 강점을 가진 해외 프로젝트에 우선 적용해 콘텐츠의 현지화 품질과 글로벌 확산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최윤희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기술 기반 콘텐츠 제작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AI는 단순한 보조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 구성의 핵심이 되는 창작 파트너다. 바른손이앤에이는 사람과 AI의 조화로운 협업을 통해 더 넓은 상상력과 감동을 담은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신규 AI 애니메이션 '캣비기' /사진=CJ ENM

신규 AI 애니메이션 '캣비기' /사진=CJ ENM

◆ CJ ENM, 콘텐츠 業 최적화 AI 기술 확보 총력

CJ ENM은 AI 기반 콘텐츠 전략을 발표하고, 자체 개발 AI 영상 시스템 '시네마틱 AI'를 소개했다.

'시네마틱 AI'는 드라마, 영화 등 내러티브 콘텐츠 제작을 위한 통합형 영상 제작 시스템으로, 기존에 이미지·비디오·사운드·보이스 등을 각각의 AI 툴로 작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원스탑 제작을 가능케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캐릭터와 배경을 3D로 자동 데이터화하는 기술을 탑재해, AI 콘텐츠에서 지적돼온 캐릭터 일관성 문제도 해결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한 첫 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AI 숏폼 시리즈 '캣 비기(Cat Biggie)'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만나 아빠가 되는 육아 이야기를 논버벌(Non-verbal) 방식으로 풀어낸 이 시리즈는 총 2분 분량 숏폼 30편으로 구성됐다. 단 5개월 만에 6명의 팀원이 완성했으며, 7월부터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공개된다.

신근섭 CJ ENM 전략기획담당은 "AI 기술을 기획·제작·마케팅 등 콘텐츠 전반에 적용해 프로세스를 고도화하고, 다양한 장르의 AI 콘텐츠를 확대해 새로운 원천 IP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며 "AI 콘텐츠에 특화된 조직을 확대하고, 글로벌 AI 스튜디오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기술이 영상 산업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지만, 제도적 정비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저작권, 데이터 보호, 창작물의 소유권 문제는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K콘텐츠가 AI 시대를 선도하려면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며 "AI 콘텐츠 산업에 특화된 가이드를 마련하고, 관련 전담 부서 설립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선 제작자와 업계 전문가들도 AI 도입을 반기면서도, 그것이 모든 창작의 대체 수단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한 제작 관계자는 "AI는 숏폼이나 단편 영화에서는 충분한 제작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서적 깊이와 완성도를 요하는 장편 상업영화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엘리오'에 참여한 이재준 픽사 시니어 이펙트 테크니컬 디렉터는 "AI 기술이 애니메이션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다만 그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달라진다"며 "기존에는 자본이 있어야 만들 수 있었던 장면들을 이제는 예술가 혼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예술가로서 더 많은 표현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